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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4 19:29 수정 : 2007.07.25 01:37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침몰선에 쌓여 있는 청자들을 수중촬영한 모습. 문화재청 제공

태안 ‘보물선’ 시굴작업

대접·사발등 펄 속에 차곡차곡
최대 10억원 참외형 주전자도

고려청자 실은 고려시대 선박 발견 지점
“퍼펙트.”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85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청자 대접을 보고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탄성을 질렀다.

24일 오후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 해저 침몰선 위쪽에 정박한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소속 17톤급 씨뮤즈호에서 고려 청자 유물 시굴작업이 진행됐다. 잠수부 3명이 수중카메라를 들고 9미터 아래 해저 발굴 현장을 비추자 고려청자들이 천년 잠에서 깨어났다.

전통 배와 청자 유물은 대섬과 형제섬 중간의 수심 9미터, 가로 7.7미터, 세로 7.4미터 넓이에 흩어져 있었다. 청자는 배의 한가운데에 차곡차곡 겹쳐 쌓인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청자들은 대부분 이빨이 빠지고 조개 껍데기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카메라를 옮겨 가자 가운데를 갈아낸 돌닻이 보였으며, 선원들이 밥을 해먹었을 세발솥도 보였다. 이곳은 남해안에 비해 시야가 좋아 수중 비디오 촬영이 어렵지 않았다. 이물과 고물이 부식돼 없어진 배의 잔해는 가로 7.7미터 세로 7.4미터만 노출돼 있지만 뻘 아래 묻힌 부분이 더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문화재청은 어민의 신고 직후인 지난 5월30일 발굴조사를 시작해 이날까지 540여점의 청자를 수습했다. 현재까지는 대접과 사발이 많았다. 윤용이 명지대 교수(도자사)는 청자 굽의 모양과 받침 형식으로 연대를 추정했다. 유 청장은 “12세기까지 만들어진 청자는 풋풋한 여대생의 엉덩이와 같다”며 “그 이후에 만들어진 청자는 70대 노파가 푹 주저앉은 모양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국내 해양 발굴 이래 지금까지 발굴된 청자 출토품은 모두 6만4천점이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원나라 무역선에서 도자기 2만2천여점이 나온 것을 비롯해 1983년 완도에선 도자기 3만점을 실은 배가 인양됐다. 그러나 과거엔 중국 청자가 발견된 적이 많았다.

이처럼 많은 고려청자가 그대로 발견된 것은 이곳이 예부터 난해량(難海梁)이라 할 만큼 조수의 흐름이 빨라 접근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인근의 군기지가 자연스럽게 보호자 노릇을 해준 탓으로 보인다.

경매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참외형 주전자가 완형일 경우 최대 10억원, 청자 대접은 100만원, 무늬가 든 청자 대접은 300만~5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어민 김용철(58)씨는 주꾸미를 낚다가 그중 한 마리가 푸른 빛깔의 접시를 휘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했다. 김씨는 2천만원 가량의 보상금을 타게 될 것으로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11월 말까지 실린 청자를 건져 올리고, 이어 배를 인양할 계획이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팀이 24일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청자를 살펴보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태안/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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