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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5 17:49 수정 : 2007.07.25 17:53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5월 11일 오후 ‘보복 폭행‘ 사건으로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승연 한화 회장 보복폭행사건 취재후기


시대와의 불화가 불온한 인간의 속성이라면, 아버지와의 불화는 세상 아들들의 내면이다. 신화 속 아버지는 아들을 토막내고, 정신분석의 밑바닥에선 아들이 아버지를 내려친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래서 언제나 불화다.

현실은 달랐다. 아버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밤하늘에 터지는 한국화약 폭죽처럼 아들을 위해 보복폭행을 작렬한다. 그가 터뜨린 폭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달 넘게 신문지면이 찢어지고 방송화면이 부서져라 타오른다.

4월 24일. 늦은 오후 연합뉴스에 H그룹 K회장이 ‘상장’됐다. 공모주가 아닌 탓에 물먹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갑자기 해당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H그룹 어디야?” 기자실은 증권거래소로 변했다. 해당 주식을 지금 사지 않으면 죽는다. “한화라는데!” 분배정의를 아는 타사 기자가 정보를 나눠준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르는 아름다운 기자실 풍경(이런 건 담합이 아니라 정보의 확산이라고 한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장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첩보가 있어 내사 중. ‘재벌 회장이 과연 그랬을까’라는 값싼 의심은 기자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주먹질은 기정사실로 머리에 박아둔다. 취재하다 팩트가 틀리면 접으면 된다. 유일하게 의심이 갔던 건 ‘북창동식’이라는 밤문화를 퍼뜨린 B급 술집에서, 가짜였을 확률이 90%에 달하는 ‘ㅇ 17년산’을 시켜 폭탄주를 마셨다는 김 회장의 행태. 그게 사실이라면 김 회장은 소박한 재벌, 아니면 그저 B급 재벌이다.

한화 쪽에 물었다. 역시나 “남자답게 폭탄주 먹고 사과하고 끝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소가 터졌다. 어제 마신 폭탄주가 신물이 되어 올라왔다. “회사와 회장님 이름을 기사에 박을 건가요?” 별로 해 준 말도 없으면서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봐서요.”

추가취재를 해도 확인된 것은 없었다. 기사는 1판에 못 들어갔다. 저녁 편집회의에선 ‘제대로 취재해 제대로 쓰자’는 결론이 떨어졌다. 특별취재팀이 구성됐다.

이튿날 북창동 바닥을 쓸었다. 종업원과 상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수십명의 술집 상무, 전무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언니’들이 다니는 미용실을 두드리고, 조폭을 집까지 찾아가 만났다. 수십 명이 떼로 왔는데, 김 회장은 안 왔다. 사장은 뺨을 맞았는데, 둘째아들이 때렸다. 말들은 사방으로 튀었다. 김 회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김 회장은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귀가 안 맞았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25일 오후 이번엔 한화 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오늘도 안 써요?” 빈정이 상했다. 오늘 우리만 안 썼다, 혹은 못 썼다는 자괴감. “사실 확인되면 한화랑 김승연 이름 박아서 1면부터 펼칩니다.” “에이, 이제까지 나온 내용이 다라니까. 뭘 펼쳐?” 한화 쪽은 자신감이 있었다. ‘오늘 한화이글스 박살나라’라는 말을 속으로 씹었다. 꾸역꾸역 기사를 8매로 정리해 띄웠지만, 팀장과 에디터는 “어차피 하루 늦은 거 제대로 확인해서 쓰자. 하루 더 준다”고 했다. 데드라인. 관대함으로 포장된 목 조르기.

26일 점심. 목 조르기에 반쯤 질식한 상태. 안 넘어가는 밥. ‘오늘도 <한겨레>가 안 썼다’는 얘기가 퍼졌다. 여기저기서 ‘왜 그러느냐’는 확인이 들어왔다. 분배정의를 실천하던 기자들은 증시가 과열되며 애저녁에 사라졌다. 그들도 ‘<한겨레> 왜 안 쓰냐’고 찔러본다. <미디어오늘>에선 의혹까지 제기했다. 요즘 맛이 갔다더니 결국 저 모양이라는 말들이 댓글로 나돌았다(<한겨레>는 욕 먹는데 익숙하지만, 그 욕들은 공정치 못할 때가 더 많다).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오후. 한화 쪽에서 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오늘도 안 쓰냐”는 똑같은 질문. 그러나 목소리는 이상했다. 정작 ‘재벌 잡아먹을 듯 써야 할 놈들’이 안 쓰니 하루 이틀은 좋았지만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사를 안 써도 쓴 것 같은 효과가 난다는 씁쓸한 깨달음. ‘쓰자. 써. 반드시 오늘 쓴다.’ 그때 특별취재팀에서 ㅅ클럽 종업원과 연결이 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갑자기 고농도 산소가 밀려왔다.

이날 신문은 3판부터 완전히 새로 만들어졌다.

특별취재팀에서 취재한 종업원들의 증언은 미친 듯이 생생했다. 그간 기사 못 쓴 보복이라도 하듯 손가락은 노트북 키보드를 미친 듯이 때렸다. 한화 쪽에 ‘약속’한대로 1면부터 한화-김승연 회장 이름을 박아 펼쳤다. 그리고, 4월 27일. 세상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직접 때렸다’는 1면 제목을 <한겨레>에서 확인한다.

자본이 공화국의 외피를 쓴 시대. 재벌은 공화국의 시민권을 사적인 주먹질과 쇠파이프질로 능멸했고, 경찰은 재벌에게 그 시민권을 값싸게 넘기려 했다. 표적은 경찰의 축소 은폐 의혹과 한화의 로비 의혹으로 바뀌었다. 취재를 할수록 의혹은 의혹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사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경찰들은 ‘찌라시 언론’에 대한 적개심을 사정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5월25일. 경찰청 감찰결과가 나오며 의혹은 사실이 됐다. 의혹을 사실로 바꾼 것은 연금술이 아니었다. ‘현자의 돌’은 없다는 것, 취재의 원칙만 있다는 것. <한겨레>에 ‘포트폴리오’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 회장의 보복폭행과 경찰의 축소 은폐 의혹에 올인했고 ‘투자’는 성공했다. 배당은 자본과 사법권력이 시민권을 농단 하려 한다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라는 경고로 아낌 없이 나눠졌다. 이런 게 바로 분배정의다.

사진/강창광 <한겨레> 기자

뒤늦게 안 사실.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 직후, 웬만한 내용을, 혹은 사건 전말을 파악한 언론사가 2~3곳은 된다고 한다. 왜 못 썼을까. 왜 안 썼을까.

5월 26일 현재 한화이글스의 2년차 ‘괴물’ 투수 류현진이 5승째. 한화이글스는 2위를 달리고 있다. 우승해서 기념 폭죽 크게 한번 쏘시길.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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