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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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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둔 동대문야구장 ‘최고령’ 스포츠용품상 이봉구씨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스포츠용품을 팔고 싶어.” 11월 철거되는 동대문야구장 1층에서 40년 가까이 스포츠용구점을 열고 있는 이봉구(74·사진)씨는 운동기구가 자식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원래 야구장은 둑에다 기둥 몇 개 세운 건물이어서 주위에는 넝마주이, 거지들이 가득했다고 해.” 영업 초기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운영하는 술집이나 미싱가게 뿐이어서 가게를 겨우 유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건 예사. 운동용구가 귀해 동대문야구장에서 넘어온 공을 주워 판매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운동장 주변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며 스포츠 애호가들이 하나둘 상점을 열기 시작해 지금 모습이 갖춰졌다. “황금사자기나 청룡기 대회가 열리면 암표상들이 새벽부터 진을 치곤 했지.” 시합이 있을 때면 야구장 주변은 야구팬들로 북적댔다. 그는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만 봐도 기분이 마냥 좋았다”고 했다. 스포츠용품점을 하면서 이씨는 갖가지 일을 겪었다고 한다. 지방상인들과 거래하면서 사기를 당한 적도 여러 번, 빚에 내몰려 자살한 동료상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 자신 장사 밑천 마련을 위해 결혼반지까지 팔아야 했다. 이씨는 “그때마다 한국스포츠 발전의 숨은 일꾼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생각에 장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고 그곳을 공원화시켜 패션타운을 건설하겠다”고 밝히고 주변 상인들에개 상점을 철수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이씨는 “서울시 행정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대책도 없이 보따리 싸고 나가라는 식”이라며 서운함을 털어놨다. 야구장 철거로 임대보증금을 돌려받는 외에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가게를 내주어야 하는 그의 시선은 어느 새 동대문야구장쪽을 향하고 있었다. 글·사진 이재휘 인턴기자 (고려대 경영 4)ljh010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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