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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8 16:06 수정 : 2007.08.08 16:39

우리나라 주부들이 남편에게 가지는 가장 많은 불만이 직장과 가정을 제외한 제 3의 사회로부터 남편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들었다. 친구들이나 동료 직장인들과의 회식, 술자리, 기타 모임으로부터 남편을 빼앗기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 3의 사회는 프랑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남편들은 집과 직장이 주된 생활이다. 회사에서 늦게 들어와도 그것은 일 때문이지 제 3의 사회에 어울리느라고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은 극히 드물다. 기회가 생기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라, 오히려 외도의 위험은 더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한국 남자분이 프랑스 회사에서 한동안 일하게 되면서 일만 같이 하고 싹 사라지는 동료들과 지내느라 처음엔 매우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렇게 공 과 사가 분명한 회사 분위기가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고, 회사 사장 가족들과 함께 일요일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가 더 편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는 이렇게 대부분 가족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이다. 결혼한 친구들끼리라도 따로 만나는 기회보단 서로의 가족과 같이 만나는 기회를 더 만들려고 하고, 직장 동료끼리도 이렇게 가족 구성원이 비슷하면 가족과 함께 만나는 경우가 더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남편들은 비교적 가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사일에 더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가사일에 적극적인 프랑스 남편들은 대부분 여유로운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웃의 한 부부는, 이미 사춘기에 들어선 딸 둘을 키우고 있어 육아에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사람들이다. 아내는 까르푸의 계산대에서 일하고 남편은 제과점에서 빵을 굽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프랑스에서는 빵을 주로 밤에 구워야 아침 일찍 팔 수 있어 이 남자는 밤에 일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큰 키에 늘씬한 체구의 건강해 보이는 이 남자는, 조깅과 자전거를 즐기는데, 그의 아내 말에 의하면 부지런한 성격때문에 밤에 일하고도 아침에 잠시 몇시간 잘 뿐 낮에는 자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질색이라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주말이면 창문 너머로 열씸히 빨래를 널거나 뭔가를 고치느라 뚝딱 소리를 내며 집안일을 하는 아저씨를 볼 수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파트 앞도 늘 예쁘장하고 깨끗하게 정돈하는 아저씨를 자주 볼수 있어서 그저 그런 우리집 앞이랑 늘 비교가 되고, 어쩌다 가끔 방문해 보는 그들의 집안은 나날이 다듬는 아저씨 덕분에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고 심지어 집안 꾸미는 것도 아내의 취향에 따라 즐긴다고 하니 그저 나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상상하건데, 이 아저씨는 생쥐처럼 이 집에 뭐 먹을 거 없나 구석구석 돌아 다니듯이, 집에 있는 동안 뭐 할 일 없나 살피는 것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여간, 이집 아저씨는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 남자 중 유일하게 바깥일과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는 수퍼맨 같은 사람이었다.

질투인지 뭔지, 다른 이웃 집 아내들은 은근히 이 남자가 머리에 든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오죽 남자가 못 났으면 집안일로 소일할까 비웃을 정도로, 프랑스 사회에서 남자의 역할이나 남자로서의 가치척도도 매우 보수적인 편이다. 어딜가나 말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성의 본질인 듯, 그럼에도 아랑곳 없이 이 부부는 매우 행복해 보인다. 특히 40을 앞두고 있는 아줌마는 아주 신선한 얼굴과 몸매로 늘 싱글거리고 다닌다.

남녀의 교육방식이 다른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특히 전통을 중요시하는 유럽국가들의 가정에서는 남자가 설겆이와 청소는 하게 하지만, 바깔일에 몰두하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시아의 국가와 크게 다를바 없다. 단지 방법상의 차이인 것 같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남성우월주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성이 중요한 일자리를 차지하는 문은 열려 있으나 일의 평가 수준은 항상 남자들보다 2배 정도 높다. 어디서나 외교술이 요구되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가정을 두고 있는 남자들의 일의 집중도가 같은 조건의 여성보다 높은 것은 전통적으로 뿌리 깊게 남성에게 숙련된 직업 의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으로서의 열등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성에게는 끊임없이 가사노동에 대한 민감도가 직업의식에서 오는 집중도를 가감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똑같은 교육 수준에 직장에서 남성을 앞서고 있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민감도는 한번 실험에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민감도가 낮은 여성은 민감도가 높은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던지, 아님 경제적인 배경이 허락하면 가정부를 고용할 것이다. 문제는 가정부를 통솔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니, 여자의 가사노동에 대한 민감도는 남자 보다 높을 수 밖에 없다.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가 집에 들어왔을 경우, 여자의 눈엔 집 구석구석 가사 노동이 아직도 존재하지만,

남자의 눈엔 해야할 가사노동이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첫째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가 보기에 해야 할 일들이 남자에겐 존재하지 않을 경우, 노동의 몫은 보이는 자에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남편들이 비록 눈에 보이는 일거리를 아내 앞에서 펼쳐 두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머리 속은 바깥일로 꽉 차있어 여전히 그들은 몸만 가정에 있다 뿐이지 머리는 일자리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것이 좋게 말해 앞서 말한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성우월의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해야 할일과 경쟁관계에서는 본능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들이 왜 가사노동에는 전혀 민감하지 않을까.

일의 가치척도가 본능적으로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노동은 그 가치에 비래해 가치척도가 상당히 낮게 인식되어 있다. 단순노동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착각이라고 하고 싶다.

댓가나 노동의 만족이 거의 없는 노동이 가사 노동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남자가 독신일 경우 가사노동에 대한 민감성은 차이가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집안일에 관심이 많은 독신 남성이라 할지라도 노동의 가치 척도가 비교적 높은 장식(최소한 창조적인 작업이 들어가므로)에는 적극적이라고 해도 가치 척도가 낮은 청소 등의 단순노동에는 민감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왜 여자들은 직장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에도 민감해 져야 하는 것일까.그 민감성에 둔한 분들도 있지만, 한국에서야 직장생활하는 여자 가사는 엉망이라고 은근히 경멸의 투로 말하여 지기 때문에 직장여성이 수퍼우먼이 되어야 칭송받고 사랑받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여서, 전문직 여성이 자녀까지 챙기고 있으면 존경받는다.

어떤 50대의 여성 변호사는 자녀가 여섯이나 된다. 그녀는 2주에 한번씩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큰아이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도 귀찬다고 버린채 완전히 혼자서 자아를 달래고자 알프스산으로 등산을 며칠씩 떠남으로써 일상의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있었다.

반면 지적인 활동을 하는 어떤 여자들은 집안이 엉망이면 오히려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때론 자신이 가사일에 빵점인 것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이렇게 가치가 낮은 노동엔 민감하지 않음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냥 어지럽게 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여성분들을 보면 그녀들의 남편들이 가사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민감도는 어떨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그런 여성분들은 대부분 자유분방해서 자녀가 없거나, 결혼도 여러번 했고, 아예 동거만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남자가 가사노동에 민감해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졸장부의 태도가 되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대도시를 제외한 프랑스의 지방에서는 아내가 가사노동에 민감하지 못하면 이혼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옛 시어머니 세대들은 남자가 오죽 못나면 집안일에 잔소리냐고 윽박질렀고, 남자가 가사노동에 민감하면 바깥에 나가 큰일을 못한다고 인식하고 여자가 집안일에 남자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칠거지악이라고 하였다.

한계가 뚜렷한 육체노동에 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노동의 한계는 얼마인지 잘 모르겠다. 가사노동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직장생활에 지쳤거나, 아닌 집안에서도 정신노동 중이라고 보이는 남자들이여, 수퍼우먼은 존재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이 마당에 수퍼맨이란 있는가 없는가 한번 보여주면 어떨까. 너무 어려운 요구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여자들이여 그네들에게 남편의 사회적 성공이 중요한가 아님 그저 충실한 가장이 더 중요한가. 두가지를 다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남편들이 가사 노동에 민감하지 않은 것은 그들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사노동에 민감한 수퍼맨을 오늘도 꿈꾸어 본다. 상상해 보라 그 멋잇는 빨갛고 파란, 가슴에는 S자가 그려진 수퍼맨 옷을 입고 청소기를 밀고 있는 모습을!!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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