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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 도매상인 이아무개씨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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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도 모자란 사람들
동대문시장 사람들은 흥인문로를 기준으로 동쪽 상권을 ‘동편제’라 부른다. 이곳 도매상가들은 저녁 8~9시쯤 기지개를 켠다. 동대문시장은 이때부터 새벽 2시까지가 대목이다. 두타, 밀리오레 등 소매상가들이 몰려 있는 ‘서편제’ 쪽은 이미 오전부터 영업에 들어가 밤을 꼬박 샌다. 요즘 장사가 잘 된다는 청평화시장(여성의류 도매상가)은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오전 7~9시엔 원단을 취급하는 동대문종합시장과 부자재를 파는 동화시장이 마수걸이 손님들인 상인·디자이너들을 맞는다. 이처럼 동대문시장에서는 3만5천여개 점포들이 릴레이로 24시간 불을 밝히며 10만여명의 밥벌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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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Korea’가 사라지는 동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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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재고’ ‘땡’처리로 손해봐도 ‘히트’ 꿈꾸며 도전
“이모, 이래야 구색이”…개시 못했는데 반품 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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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의 브랜드 리미티드에디션의 김래연 사장(사진 왼쪽)과 디자이너 이상미(오른쪽)씨가 신상품 디자인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혜민 인턴기자 (한동대 국제어문 4) waiting4dadasi@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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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대박’을 꿈꾸며=오전 10시. 국립의료원 맞은편에 있는 한 작은 건물 3층 사무실에서는 회의가 한창이다. 남성상의 브랜드 ‘리미티드 에디션’의 김래연(30) 사장과 디자이너 이상미(27)씨가 ‘신상’(새상품) 논의를 하고 있다. 같은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은 20대 남녀의류 도매상가인 에이피엠에 지난해 8월 점포를 열어, 동대문을 꿈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상미씨는 봉제공장에 줄 ‘작지’(작업지시서)에 티셔츠 모양을 그리고 설명을 쓴 뒤 필요한 색깔의 원단들을 오려 붙였다. 원단 가게에 줄 발주서도 작성했다. 신상품을 내기 전엔 샘플을 만들어 반응을 본 뒤 수정을 거듭한다. 사무실에는 상품화에 실패한 샘플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김래연 사장은 “여유가 있을 때 모험을 하는데 그게 잘 맞으면 히트상품이 나오는 것이다. 10개 중 2~3개 꼴”이라고 말했다.
■ 시장에 나서기 전에 어떤 일을? =점심식사 뒤 상미씨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화시장에 들러 필요한 부자재를 주문했다. 이어 잰걸음으로 동대문종합시장의 거래 상점에 들러 원단을 발주한다.
상미씨는 다시 택시를 타고 신당동에 있는 30여평 규모의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사장과는 새상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나 남은 라벨과 포장팩 수량을 점검한다. 상미씨가 공장에서 나오니 벌써 오후 3시다. 디자이너들은 시간이 나면 시장조사를 한다. 명동, 압구정동 등에 나가 상품의 소재나 디자인을 살피거나 외국 컬렉션 잡지, 인터넷 쇼핑몰 등을 참고하다 보면 어느덧 해질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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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의 의류 제작 및 판매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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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과의 전쟁=상미씨네 판매사원이 에이피엠 매장에서 옷을 팔 채비를 하는 저녁 8시께, 인근 도매상가 아트프라자에서 여성 상의를 파는 이아무개(58)씨와 판매사원 오민경(가명·25)씨의 하루도 시작된다. 이씨는 20여년간 장사를 한 베테랑이지만 요즘은 장사가 안된다며 울상이다.
몇시간 뒤 지방 상인들도 ‘장차’(대절버스)를 타고 새상품을 사거나 반품을 하기 위해 동대문으로 온다. 이들은 동대문시장을 돈 뒤 무료 셔틀버스나 택시를 타고 남대문시장에 들렀다 새벽 4시께 일터로 돌아가 하루를 시작한다. 도매상가에는 큰 쇼핑백을 메고 매장을 돌아다니는 손님들이 늘었다고 한다. ‘상인’처럼 행세해 물건을 싸게 사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척 보면 상인인지 아닌지 안다”고 말한다.
한 중년 여성에게 민경씨가 색깔이 다른 티셔츠 3개를 겹쳐 보이며 “이모, 이래야 구색이 맞지”라고 설득했다. 지방 소매상인 이 여성은 고심 끝에 현금을 내놓는다. 도매시장에선 현금거래가 당연하다. 세금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현금영수증기나 카드결제기가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창 바쁜 시간인 오후 11시 아트프라자 2층 한 매장에서는 짜증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방 상인이 며칠 전 산 원피스를 주인 몰래 놓고 새 것을 가져간 탓이다. 상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폭탄’은 반품이다. 민경씨는 “단골들은 우리가 개시 전인것 같으면 알아서 ‘이따 갖고 온다’며 지나 간다”고 전했다. ‘반품 불가’ 조건이 붙으면 가격은 내려가는데 이 경우 상인들은 라벨에 반품 불가 표시를 해둔다.
자정이 넘어간 시각, 대만인들이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끌고 다니며 물건을 골랐다. 상인들은 일본, 중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요즘 부쩍 줄었다고 말한다. 15년째 동대문시장과 거래하고 있는 일본인 도매상인 야마모토씨는 “동대문에서 주로 여성용 티셔츠,스커트, 바지 등을 사가는데 최근 4~5년동안 (매입량이) 3분의 1로 줄었다. 환율, 일본내 불경기, 중국산 등의 영향이다”라고 말했다
■마감 무렵의 풍경들=도매상가의 점심시간은 새벽 2시다. 매장 앞 진열대는 식탁으로 변하고 친한 상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인다. 밥상에는 인근 식당에서 배달시킨 보쌈이나 아구찜 등 푸짐한 요리도 올라간다. 한 상인은 “원래 꿈에 여자들이 나오면 장사가 안되는데 어제 밤에는 미녀들이 떼로 나를 쫓아왔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새벽 4시가 넘어가면서 상인들 일부는 사우나를 가거가 새벽술을 마시며 피곤을 달랜다. 좁은 매장안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해 보기도 한다. 새벽의 공허함을 떨쳐내려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읽는 이들도 있다. 멀리 동이 터오기 시작할 무렵 동대문 사람들은 또다시 하루를 준비한다.
박현정 임주환기자
saram@hani.co.kr
권세욱 인턴기자(성균관대 신문방송학4 )
동대문을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
사입삼촌 지방상인 대신 구매·교환·진열까지 관리
지게꾼 상가와 매장사이를 누비는 동대문의 ‘발’
각양각색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구슬땀이 동대문시장을 24시간 돌아가게 한다.
어둠이 깔린 뒤 한 손에 수첩과 옷 봉지 등을 들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남성들은 대개 사입삼촌이다. ‘사입(사들이기)업무’와, 동대문에서 남자들을 부르는 보통명사인 ‘삼촌’의 합성어이다. 이들은 지방상인, 쇼핑몰 운영자들을 대신하는 동대문의 주요 구매자들이다. 지방상인들은 대개 1~2주에 한번 신상품을 살 때만 동대문에 오고 평소에는 사입삼촌을 많이 이용한다. 수천명으로 추산되는 사입삼촌 가운데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면 천만원 이상의 월수입을 버는 사람도 있다. 사입 형태는 다양한데 완사입은 구매부터 교환·반품·매장 진열·장끼(영수증)까지 관리한다. 반사입은 구매만 대신 해주는 것이다. 최근엔 온라인을 통해 사업자등록증을 낸 사입대행 전문업체도 생겼다.
동대문시장엔 짐을 나르는 다양한 직업군들이 있다. 공장에서 물건을 상가 앞까지 배달해 놓으면 지게꾼들이 각층 매장으로 짐을 나른다. 청평화시장 뒤에서 만난 지게꾼들은 “해마다 상인회와 관리소, 지게꾼들이 모여 요금을 결정한다. 거리나 층수에 따라 요금이 다른데 요새는 건당 2천~3천원 받는다”며 “상가마다 지게꾼들이 다른 조끼를 입고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가슴에 번호를 달고 있고 지게를 세워놓은 순서에 따라 일을 받는다”고 말했다. 동대문내 도매상가에서 소매상가로 가벼운 짐을 나르는 경우엔 오토바이를 이용한 퀵서비스가 활약한다. 동대문시장 인근에서 퀵서비스를 하는 박아무개(48)씨는 “기본요금은 두 봉지 배달에 5천원으로 한 봉지가 추가될 때마다 3천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트럭으로 짐을 배달하는 용달차 운전수들은 무거운 원단 등을 싣고 달린다. 30여년간 용달 일을 한 나아무개(70)씨는 “기본요금이 6만원으로 창신동처럼 가까운 지역은 2만원을 받는다”며 “이 일로 돈을 벌어 자식들 대학 공부시키고 장가도 보냈지만 지금은 나도, 차도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 밖에 동대문 운동장 주변 노점상들은 먹거리나 액세서리, 이미테이션 제품 등을 판다. 상가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입이 심심한 상인들에게 먹거리를 몰래 파는 잡상인도 있다.
박현정 임주환 기자
권세욱 인턴기자(성균관대 신문방송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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