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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4 18:39 수정 : 2005.01.14 18:39

스리랑카 북동부 트링코말리 지역 알라쉬 가딘 마을의 어린이들이 지난 13일 의료진과 구호 물자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담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한민족복지재단 제공

■ 지진해일 재앙 스리랑카 북동부 르포

의료진 태부족 “치료받게 해달라” 시위까지
‘생선이 주검먹는다’ 소문 탓 밥벌이도 안돼

“아픈 데는 없나요?” “의사선생님, 죽고 싶어요.”

나사말라(32)는 이 말만을 되뇌었다. 지진해일에 두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이다. 독실한 힌두교도인 그에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거듭 태어난다’는 종교적 믿음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듯 했다.

지난달 26일 지진해일 뒤 스리랑카 북동부 트링코말리 셀바나야가 푸람의 수용소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하루종일 사람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으며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사말라는 그래도 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들이 가득한 이 수용소에서는 ‘행복한’ 편에 속한다. 남편은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살아나,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중인 까닭이다.

그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심한 공포와 더불어 “나만 살아남았다”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400여명의 트링코말리 지역 수재민을 치료한 한민족복지재단 소속 의사 최강주(41) 박사는 “몸의 상처 못지않게 마음의 상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14일 말했다.

“사람들이 지진해일에 대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감정 표현도 하지 않아요.” 최 박사는 “지진해일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는 죄책감으로 그 어떤 전쟁 못지않게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화 시켰다”고 진단했다.


‘드러난’ 육체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 “해일 직후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상처가 뼈가 드러나도록 곯은 사람도 있었고요, 외과의사가 없으니 상처를 꿰멘 사람들이 없어요.” 지난 12일에는 인근 알라쉬 가딘 마을의 주민 200여명이 길을 막고 의료지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건’까지 있었다.

대부분 영세 어민인 이곳 주민들은 해일에 생계 수단인 배와 그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시 바다에 나간다고 해도 잡은 물고기를 아무도 사지 않을 것으로 보여 더욱 고민하고 있다. ‘물고기들이 휩쓸려간 시체를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 유력지 <데일리 미러>는 최근 신문 1면에 ‘대통령, 내각과 물고기로 저녁 식사를 하다’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트링코말리 지역 역시 90년대 이후 격렬해진 스리랑카 정부군과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와의 교전지역이다. 나무로 된 해변지역 가옥 대부분은 파도에 휩쓸렸으나, 남아있는 벽돌집 대부분은 전쟁이 남긴 탄환 자국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해일로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이 당신 주위에 있다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세요. 그는 당신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직접 도울 수 없다면 주변의 도움을 구하세요.”

스리랑카 언론들은 날마다 이런 내용의 공익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인구 1800만명에 최소 3만명, 최대 6만명의 사망자를 낸 이 나라에서 눈에 보이는 피해 만큼이나 남은 자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트링코말리(스리랑카)/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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