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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타나무 카페에서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에 따라 피해자·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문서의 즉각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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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집회표정
"5억달러 받아서 우리에게 뭘 줬나" 격앙
말바꾸기 일본에 분노 일장기 소각 시도
유족, 청구권 재협상 요구 '소복시위'도
“일본 정부는 왜 이렇게 말을 자주 바꾸나요?” 양순임 태평양전쟁유족회 회장(60)은 17일 오후 1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면서, “한일협정 문서를 통해 일본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다”며 “한일협정은 한일 양국의 밀실야합을 통해 맺어진 잘못된 협정”이라고 울먹였다. 그는 “유리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대는 일본 정부와, 자국민들의 피맺힌 울음에 40년 동안 귀를 막아온 우리 정부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를 보면, 일본 정부는 협정이 체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구권 자금이 경제협력 자금임을 강조해, 배상금 성격을 갖는 청구권이라는 점을 못박으려는 우리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본 의회에서 청구권 협정으로 국권침탈(한일합방)로 인한 ‘외교보호권’만 포기돼 왔다고 주장해 왔지만, 199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징용배상특별법(헤이든 법·나치 동맹국에 의한 강제노동 시효를 2010년까지 연장)으로 세계 각국의 배상 소송이 잇따르자, 한국에 대해서는 말을 바꿔 국제 조약인 한일협정에 의해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날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장기를 불태우는 흥분한 유족회원 100여명과 경찰이 충돌을 빚었고, 유족회원 여러 명이 얼굴과 손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행사 참가자 10여명은 하얀 소복을 입고 ‘일본 사과’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채, 청구권 재협상과 추가 문건의 완전한 공개, 희생자 유족에 대한 직접 보상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요구사항이 담긴 성명을 일본대사관 쪽에 전달하려고 했으나, 대사관은 이를 받지 않았다. 일본대사관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일제 강제동원으로 숨진 징용자들의 영정을 들고 우리 정부 쪽으로 향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이들은 “한·일 양국은 희생자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비상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희생자 보상, ‘사과 없는 일왕가족 방문 반대’ 등의 손팻말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전경들이 곧 이들의 주위를 둘러쌌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에 따른 피해자단체·시민단체’도 한일협정 내용 전부를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외교통상부에 전달했다.
곽기훈 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일본 정부는 원폭으로 희생당한 자국민들에게만 피해 보상을 하고 한국인 피해자들의 문제에는 눈을 감았다”며 “우리에겐 정부가 없다”고 울먹였다. 김경식 태평양전쟁한국인희생자유족회 회장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번 문서 공개로 우리 정부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저자세 협상을 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며 “일본 정부로부터 5억달러나 되는 돈을 받고서 도대체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 돈으로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이제 그만 우리를 배려해 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렇지만 해방 뒤 20년이 지나 사망자 유족들에게만 30만원의 보상을 해준 우리 정부가 스스로 나서 이들을 돌봐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순임 태평양전쟁유족회장은 “태평양 전쟁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 민족사”라며 “태평양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 없이 일왕이 한국을 방한하면 앞장서 이를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상철 길윤형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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