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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8:26 수정 : 2005.01.17 18:26

서울 은평구 구산동 ‘결핵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17일 낮 삼삼오오 모여 임대아파트 건립 문제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61 속타는 주민들
입에 풀칠도 힘든데 2억 내놔야 된다니...

서울 은평구 구산동 ‘결핵인 마을’에 사는 김상길(73)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결핵 환자들에게 아파트를 지어준다고 해 기대가 컸는데, 허물어져 가는 3~5평 짜리 판자집을 소유한 ‘집주인’들도 1가구당 2억원 안팎의 돈을 내놔야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에 결핵에 걸린 몸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한 그는 “그 돈이 있으면 밖에 집을 얻어 나가지 왜 여기 살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결핵 환자들을 위해 추진중인 은평구 구산동 산 61일대 임대아파트 건립 사업이 주민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 결핵인 마을은 1960년 7월 우리 나라 최초의 결핵 전문병원인 서대문 시립병원 주변에 전국 결핵 환자들이 몰려들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현재 185가구 254명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에 지어진 판자집 119채는 모두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노후 건축물로, 지난해 청와대 빈곤차별시정위원회의 조사 결과 하루 빨리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공공시설 안돼 지원 못받아


이 때문에 고건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1월께 이곳을 찾아 총리실 복권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복권기금에서 39억4천만원을 떼어내,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싼 집을 2007년 말까지 짓기로 했다.

그러나 이곳은 도로·공원 등 공공시설 등에만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 개선지구’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이 있더라도 총 사업비(256억원) 대부분은 주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서울 에스에이치(SH)공사는 이를 위해 무허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주민 51가구(전용면적 18평)에게 1인당 2억원 정도의 돈을 받고 아파트를 분양해 사업비를 충당할 계획이지만, 주민들이 “돈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반대해 사업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사업이 끝나면, 세입자 166가구(전용면적 6~9평)는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저렴한 보증금(200만원 안팎)과 임대료(5만원 안팎)만 내면 당장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

그러나 판자집 소유주들이 2억원 안팎의 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주민의 3분의 2인 125가구 143명이 경제능력이 없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주민 70% 생활보호대상자

집 주인인 송아무개(54)씨의 한달 수입은 2인 가족 최저생계비 57만원과 장애인에게 따로 나오는 보조금 18만원을 합친 75만원이다. 송씨와 부인(51)은 오랫동안 앓아 온 결핵으로 폐가 망가져, 사회복지기관에서 보내 온 산소통을 옆에 끼고 위태로운 삶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부부는 한달 수입의 4분의 1 정도인 20만원을 약값으로 지출한다. 송씨와 비슷한 여건의 결핵 환자는 105가구 113명이나 된다.

은평구 관계자는 “한 가구당 2억원은 이곳 주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액수”라며 “어설프게 사업이 추진되면,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을 밖으로 내쫓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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