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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15:45 수정 : 2005.01.25 15:45

경찰이 현장에서 입수한 성매매업주 김씨의‘각서’.



[현장] 강제성매매 각서 382장 무더기발견…목돈미끼 착취 확인

“위 금액을 선불로 받았으며, 본인의 어려운 생활여건에 도움을 주신 업주님께 감사드리며…”.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듯한 이 글의 정체는 성매매 여성이 업주에게 써준 500만원짜리 ‘취업 선불금 각서’다. 각서 내용은 “차후에 위 금액을 상환하지 않고 무단으로 이동할 경우 업주님께서 취업사기로 고소를 하여도 인정하며 법의 처벌을 감수할 것을 확약한다”고 돼있다.

이 각서의 주인은 경기도 양평에서 유흥주점을 하며 여성들에게 강제로 성매매를 시켜온 업주 김아무개(45·여)씨다. 김씨는 경찰청 성매매피해여성긴급지원센터(전화 117번)에 접수된 피해여성 신고로 붙잡혀 성매매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이 입수한 김씨의 ‘각서’는 무려 382장. 김씨가 성매매 피해 여성 91명한테서 받은 것으로, 자동차 트렁크에 감춰왔다.


한꺼번에 이만한 규모의 성매매 선불금 각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성매매 업소 업주들은 대개 관련장부를 인근 편의점 같은 제3의 장소에 감춰두기 때문에, 경찰이 각서를 무더기로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무더기 발견은 드문 일… “인권침해 감수하겠다”는 내용도

선불금 이행각서, 현금 차용증, 취업 선불증, 위임장, 약속어음…. 이번에 발견된 각서는 종류와 내용도 다양하다. 이 각서들은 선불금이라는 이름의 목돈을 미끼로 여성들을 성매매의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성매매 산업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선불금을 변제하지 않고 무단으로 이탈 및 잠적함으로써 아래 업소에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을 경우 업소에서 본인을 찾기 위해 현상수배를 하거나 인권침해(집방문, 친지 및 가족 면담, 등초본·호적 열람, 타지에서 업소까지의 동행요구 등)의 행동을 하여도 감수할 것을 확약합니다. 위 여러가지 사항에 대하여 법적 문제를 삼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각서의 제목은 놀랍게도 ‘인권 침해 및 현상 수배 동의서’였다.

이밖에 “변제하지 못할 경우 현금 갈취를 목적으로 한 행동임을 인정하며…”(3천만원짜리 ‘현금차용증’)라거나, “곧바로 변제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취업을 위장, 귀하로부터 금전을 편취한 것으로 간주하고 귀하가 본인을 사기 등으로 고소하더라도 하등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약함”(2300만원짜리 ‘취업선불증’)이라며 법적으로 무지한 성매매 여성들을 협박하는 내용도 있다.

선불금 대신 빼앗은 차 안에 각서 감춰오다 들통

또 다른 각서에는 △외박·외출시는 보고후 이동한다 △휴가는 사전에 책임자와 상의후에 결정한다는 등의 군대식 행동 수칙과 함께, △윤락을 하였다는 이유를 대고 선불금 중 일부분만 변제후 민사법을 도용하는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업소 이동시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업소에 10일간의 여유기간을 준 후 업소를 이동한다 등의 다짐도 있었다. 이자 및 소송비용 등의 경비를 피해여성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내용도 있었다.

수사 결과, 업주가 각서를 보관해온 자동차도 피해여성 이아무개(24·여)씨에게서 선불금 대신 빼앗은 것이었다. 이씨는 지난 2003년 10월 친구의 소개로 500만원의 선불금을 받고 이 업소에 발을 들여놓았다. 업소 생활에 필요한 옷과 화장품 등을 사느라 500만원은 쉽게 바닥이 났고, 결근비 등 각종 벌금으로 선불금은 되레 1300만원까지 늘어났다. 이씨는 지난해 2월 업소를 탈출해 집으로 돌아왔으나, 업주의 협박이 계속되자 같은해 12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성매매 전제 선불금 각서는 모두 무효”

경찰은 차량에서 발견된 피해여성 91명의 명단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업주의 선불금 사기고소로 도피 중인 사례와 성매매 밀집지역으로 인신매매된 피해 여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 중이다. 업주 김씨는 지난해 2월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과를 숨기기 위해 사업자 명의를 인근 음식점 종업원으로 위장해 등록한 뒤, 불법행위를 계속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에도 10년 전 선불금의 각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해결사를 시켜 26명의 피해 여성을 협박하다 피해 여성의 남편이 자살하거나 이혼에 이르게 한 불법 직업소개업자를 구속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매매를 전제로 한 선불금은 갚을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례가 있어 이런 각서들은 모두 무효인 데도 피해 여성들이 법률지식이 없어 업주들한테 계속 당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번에 업주 김씨를 신고한 피해여성 이씨에게 신고보상금을 지급할 지를 두고 심의하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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