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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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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학자들 ‘교과서포럼’ 창립…“친북·좌파 교과서” 주장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 초기 잠깐 존재했던 삼청교육대는 잘 알고 있었다… 햇볕정책 실시 이후,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 부쩍 강조된 이른바 ‘통일교육’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시켰다.”(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보수계열 학자들이 ‘편향’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겠다며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에 뛰어 들었다. 지난해 친북·좌파 교과서 논란 바람에 부풀었던 돛대의 아딧줄을 넉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당겨 세웠다.
◇ 박효종 교수 “학생들에게 죄많은 나라 의식 가르치지 말라”
25일 창립한 교과서포럼(상임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은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자학사관’과 ‘이념적으로 편향’된 근·현대사 교과서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정치학),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김세중(연세대)·류길재(경남대)·김종석(홍익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는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성공한 국가인가, 아니면 실패한 국가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우리 대한민국이 잘못됐다고 나와있는 게 현실”이라며 “얼굴에는 태극무늬를 그리고 축구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을 채찍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박 대표는 분단과 전쟁, 빈곤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거친 우리나라의 ‘아픈’ 부분으로 △민족주의 △산업화 △민주화의 미완성을 든 뒤, “그러나 모든 미완성이 비판받을 필요는 없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아름답듯이 대한민국의 미완성에도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수사학을 이어갔다. 또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대한민국이 성공하고 북한이 실패했다는 것은 팩트이자 리얼리즘인데도 우리 교과서는 사실확인의 엄숙함을 잃고 북한에 우호적”이라며 “언제까지 죄많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죄의식을 교실에서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 나선 교수들의 발제문은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이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친북·좌파 논란을 부추겼던 내용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거나, 확인된 사실조차 건너 뛰며 격하고 감정적인 언어를 쏟아냈다. 일부는 학생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모든 교과서가 천편일률적인 것은 교육부의 ‘지침’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전상인 교수“미 군정 친일파 기용은 ‘기능주의’”
첫 발제자로 나선 전상인 교수는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과정’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월간조선>이 지난해 4월 ‘경고! 귀하의 자녀들은 위험한 교과서에 노출돼 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행 고교 국사 교과서의 ‘반한·친북 성향’을 지적한 직후, 당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청소년들을 이렇게 가르쳐서 군대로 보내면 군대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교육부 장관에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가 예하부대 정훈교육 계통으로 하달한 문서는 <월간조선>에 나왔던 것과 내용면에서 거의 같아, “월간조선 보도를 검증없이 무비판적으로 인용해 장병을 교육했다”는 비판과 함께 국방부의 ‘퇴행적 역사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던 사실은 전하지 않았다.
전 교수는 이어 시중에 나와있던 6가지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교하며, 금성출판사의 교과서에 집중적으로 칼날을 들이댔다. 전 교수는 교과서별로 목차를 비교한 뒤, “금성출판사만 ‘통일 정책과 평화 통일의 과제’가 아닌 ‘북한의 변화와 평화 통일의 과제’라고 한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는 북한 현대사를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로 취급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가 같은 책에 서로 섞여 있는 것은 일본 역사책에 중국의 역사를 혼합해 쓰는 것 못지않게 어색하다”며 “차라리 별도의 북한 근·현대사를 저술하고 간행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하는 헌법조항대로라면 오히려 북한 현대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가 되는 게 옳지 않은지 의문을 낳게 하는 주장이었다.
전 교수는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1945년 광복을 다루면서 연합국 승리에 의한 광복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의 새로운 국가건설에 ‘장애’가 되었다고 한 서술은 문제가 많다”며 “우선 장애를 주장하기 전에 독립을 가져다 준 연합국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사의 표명이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성출판사가 볼 때 연합국 승리에 의해 ‘장애’를 받은 것은 건준/인공이었다”며 “건준을 강조하는 것은 해방정국을 ‘사회혁명’의 시각에서 설명하는 방식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또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 논쟁에 대해서는 금성출판사를 위시한 몇몇 교과서들이 모스크바 3상 회담의 진실이 왜곡 전달됨으로써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예정된 올바른 진로가 차질을 빚게 됐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며 “금성출판사가 ‘동아일보’에 의한 진실 왜곡을 강조하지만, 당시 수많은 신문들 가운데 유독 동아일보의 영향력을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를 깎아내림으로써 <동아일보>를 두둔하는 교묘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전 교수는 또, 미 군정기에 “미국이 친일세력을 의도적으로 비호하거나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일부러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군정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미국이 적어도 초기에는 여러가지로 준비부족에 시달렸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런 맥락에서 미 군정 당국이 일제시대 한국인 관리를 재등용한 것은 일종의 ‘기능주의적’ 해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밖에 “냉정체제의 역사적 붕괴와 오늘날 북한체제의 참상을 감안할 경우, 이승만의 단정수립 계획은 혜안 혹은 예지의 결실”이라며 “단정수립을 반대하면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김구와 김규식을 현행 역사 교과서들이 일방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일은 냉철하게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들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김구가 이승만의 단정이나 이승만의 독재로부터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만은 솔직하게 지적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결론에서 “대부분의 근·현대사 교과서들에서 사실적 오류와 이념적 편향이 발견됐으며, 이는 감상적 민족주의와 수정주의 역사관의 영향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현대사에 관련된 수정주의는 통상적인 진보·좌파적인 시각을 넘어 친북·주사와 가깝다는데 특징이 있다”며 “한국형 수정주의가 친북·주사적 속성을 갖게 되는 일차적인 원인은 송두율식의 이른바 ‘내재적 접근’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부의 주사파 수정주의와 내부의 자민족 중심주의가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만나는 최적의 접점은 광주이고, 1980년이며 또한 2002년”이라는 이해부득의 수사를 구사했다. 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들의 반미적 성향이나 반자본주의적 정서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공통의 담론”이라며 “이러한 이념적 성향이 사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사실이 편향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우리나라 현대사 교과서의 현재 기능인 셈”이라고 결론지었다.
결국, 전 교수의 주장은 “국사학계가 저술·검정·출판 등의 과정을 사실상 독점하는 체제의 청산”으로 귀결된다. 사회학·경제학·정치학 분야 등에 문을 열라는 주장이다.
◇신지호 교수 “소신없는 학자들, 경제이권 노려 시류 영합”
‘사회학’ 전공인 전 교수에 이어 ‘정치학’ 전공인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가 다음 발제자로 바통을 넘겨받았다. 최근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우익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신 겸임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있는 것은 몰라도 전두환 정권 초기 잠깐 존재했던 삼청교육대는 잘 알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강조된 통일교육이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시켰다”는 ‘정치적’ 시각으로 자신의 발제문 ‘북한역사 전개과정과 남북관계’를 시작했다.
신 겸임교수는 일본 우익의 자국 역사기술을 비판하는 논리인 ‘자학사관’을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는 자학사관으로, 북한 역사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혹자는 이를 반미친북 교육이라고 부르지만, 이러한 교육의 본질은 반대한민국”이라고 주장했다.
신 겸임교수는 이미 지난해 친북·좌파 교과서 논란에서 끝없이 반복된 내용을 충실히 반복한 뒤, 교과서 집필진과 전교조에 대한 싸잡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금성교과서 집필진은 모두 6명이다. 3명은 대학 교수고, 3명은 고교 교사다. 고교 교사 3인의 전교조 가입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3인 모두 전교조 조합원이라 할지라도 대학 교수 3인이 그에 동조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어 신 겸임교수는 ‘이념과 이권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교과서 집필은 경제적 이권과 직결된다. 따라서 뚜렷한 소신이 결여된, 시류에 영합하기 좋아하는 사대·교대 교수들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시행된 통일지향적 교육지침과 야합한 결과가 오늘날의 교과서라 해야 할 것이다. 금성교과서 집필진 고교 교사 3인은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참고서의 집필진이기도 하다. 교과서 집필이 참고서 집필의 기회까지 부여한 셈이다.” 이 부분에서 신 겸임교수는 ‘교과서 내용을 잘 아는 필진이 참고서도 집필해야 한다’는 상식을 망각한 듯하다. 신 겸임교수는 “54%의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는 금성교과서를 방치하는 것은 칠천만 겨레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말로 다섯장 짜리 짧은 발제문을 끝냈다.
이대근 “역사 교과서에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사회학-정치학에 이어 경제학이 역사를 위해 뛰어 들었다.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이날 발제 가운데 가장 충실한 분석을 담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산업화’라는 발제문에서 교과서별로 ‘경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다뤘다. 그러나 이 교수는 발제문 시작부터 “검인정이 아니라 국정이라고 해야 한다”며 벼락같이 ‘화두’를 집어 던졌다.
6종 교과서가 본문 속의 소항목 명칭에 이르기까지 놀랄만큼 동일하다며, “이처럼 마지막 항목까지 철저히 통일을 기할 수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글의 ‘경제성’을 해치며 주제를 산만하게 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 교수는 긴 해설을 덧붙였다. “이는 교과서 편집과정에서 사전적으로 어떤 강력한 외부의 힘이 작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교과서를 만드는데 처음부터 정부 당국의 강력한 통제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슨 이유로 검인정이라 해놓고, 교과서 집필에 있어 이처럼 철저한 사전 통제를 행사하게 되었을까…… 교과서 내용을 자기가 원하는 한가지 내용으로 만들기 위한 어떤 정치적 내지 교육적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어떤 외부의 힘’, 즉 애덤 스미스 식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강조한 경제학적 관점이긴 하지만, 교과서 편찬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는 게 교과서 제작 관계자들의 말이다.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을 교육부가 제시하면 이에 맞춰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집필하고 검인정을 받는 것은 이미 공인된 편찬과정이다. 게다가 이는 지난해 교과서 논란 당시 수없이 되풀이된 해명이다. 굳이 ‘외부의 힘’이니 ‘통제’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경제 분야를 다루면서 “해방 직후의 경제적 난관이나 50년대의 경제복구 과정, 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 과정에 이르기까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공정한 기술을 하지 않고, 필자의 이념적 입장이나 선입견에 의해 심히 주관적 판단과 해설을 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긍정적 기술을 한 뒤, 항상 ‘그러나’, ‘그럼에도’라는 단서을 붙여 부정적 측면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킨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예는 다음과 같다.
△5개년 계획의 추진과 관련해, 5·16 군사정부는 이전의 민주당 정부에서 수립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기간중 평균 성장률은 두 자릿수에 가깝고, 1인당 소득은 2배로, 수출은 20배로….
‘그러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이러한 고도성장이 외국자본과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길을 밟음으로써, 국민경제의 해외의존도를 높이고, 차관 상환압박과 국제수지 적자를 누적시켰으며…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부는 일부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등 산업조직의 개편과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한 금리의 인하, 수출자유지역의 설치…
△1970년대에 제3, 4차 5개년 계획때부터 지금까지의 경공업 개발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개발로 방향전환을 가져왔는데…높은 성장실적에도 ‘불구하고’, 다른 편으로는 1차산업의 쇠퇴와 공해 유발, 대일 의존도 심화….
△재벌이 한국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한 때 빠른 성장과 수출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동시에’ 재벌은 더 이상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내리는….
이 교수는 1980년대의 경제개방화 추세에 대해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선진 자본주의국이 인근 지역과는 보호무역을 강화면서도 후발 개도국에 대해서는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는 이러한 미국 등의 선진국 압력에 굴복하여 국내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한국농업은 값싼 수입농산물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고 기술해 다른 교과서들과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 김일영 교수 “박정희 18년은 겨우 6쪽…‘서울의 봄’·‘5·18’은 무려 3쪽”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사람은 지난해 친북·좌파 교과서 논란에서 <조선일보>의 논조에 힘을 보탰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였다. 김 교수는 ‘역사교과서인가, ‘민족·민주’ 운동사 교재인가?’라는 도발적 제목의 발제문에서, “역사란 좀더 살갑게 정의하면 앞선 세대의 삶의 발자취이며, 현대사는 부모나 조부모의 삶의 궤적”이라며 “평범한 소시민이야 덜 하겠지만 적어도 ‘유명인’을 부모로 둔 사람들에게 현대사는 곧 아버지의 개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역사의 사유화’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논리를 폈다. ‘아버지 이승만’, ‘아버지 박정희’라는 두터운 메타포가 겹쳐지는 발언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이문열의 소설 <시인>을 인용하며, “아버지 지우기와 찾기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명. 이것이 고대의 오이디푸스 왕 신화부터 최근의 <시인>까지 수천년 이어지는 인류 역사의 지적 축적이 주는 교훈”이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김 교수가 보기에, ‘아버지 지우기’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은 ‘수정주의자들과 386들’이다.
“수정주의자들과 386세대는 한국 현대사 전체를 그들의 눈으로 재해석하려 들었다. 그들에게 한국 현대사는 반민중, 반민족, 반민주의 역사였다. 그들에게 우리 현대사는 오욕의 역사이고, 지우고 싶은 대상이며 다시 쓰고 싶은 대상이었다.”
김 교수는 “이승만 정부 10년을 다룬 양은 1페이지뿐인 반면, 4.19혁명에서 장면 정부까지의 1년 남짓한 기간에 대해서는 무려 6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 18년을 다루는 부분이 6페이지라는 사실에 비춰 지나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일어난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의 분량과 전두환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의 20여년에 대한 설명의 양이 3페이지로 동일하다”며 “민주주의가 운동사에 치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즉, “분단의 역사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나치게 홀대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민주화 운동사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양적 불균형의 원인을 “한국 현대사를 분단의 역사와 민주화 투쟁사라는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서 찾으며 “교과서에 나오기 힘든 표현인 ‘민족 민주 운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기도 했다. 김 교수는 “민족 민주 운동에서 민족은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 경우 자주는 많은 경우 ‘반미자주’를 의미한다…민족 민주 운동에서 민주는 민중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민족 민주 운동은 분명 1980년대 이후 운동권에서 쓰이던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풀과 가위보다는 연구에 기반한 교과서를 원한다. 전공자의 연구에 근거한 대안 교과서의 출현을 기다려 본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역사학자가 아닌 ‘전공자’를 강조하는 것은 지난 1월 6일 <조선일보>의 교과서포럼 관련 기사와 맥을 같이 한다.
북한민주화포럼 등 보수단체들이 행사 주관
“왜 학자들이 나서기 시작했을까. 이번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1980년대 좌파 학자들이 대학가에서 주도한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제 방송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한국 현대사 해석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그 동안 역사 분야를 독점해온 국사학자들에 대해 사회과학자·서양사학자들이 문제 제기를 던지는 양상이란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파란과 격론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년간 교과서와 교양서, 강의 등을 통해 대중의 역사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쳐온 국사학자들은 명분론·일국사적 관점을 강조하는 반면 사회과학자·서양사학자들은 현실론·비교사적 관점을 중시하고 있어 한국사를 보는 관점에서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낸다.”
학제간 연구를 통해 우리 역사가 좀더 풍부한 양감과 세밀한 질감을 얻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교과서포럼의 첫 심포지엄은 건강한 학제간 연구의 시작이라고 보기에 상당히 ‘민망한’ 모양새다. 지난해 교과서 논란 당시 금성출판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교과서의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일부만을 발췌하거나 멋대로 해석했다”며 34개 항목에 걸쳐 공식적으로 반박했던 바 있다. 이날 행사는 북한민주화포럼과 자유주의연대 등 보수단체들이 주관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기사에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기대하라는 대목이 있다. “이달 하순 나올 ‘현대한국사강좌’(전 5권·생각의나무) 시리즈에 참여한 김일영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독재라는 부정적 측면뿐 아니라 ‘건국(建國)과 부국(富國)’이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남한 단정론(單政論), 농지개혁, 한·미동맹,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 등 쟁점이 되는 중요 사건들이 한국의 국가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한국사강좌’는 남북한 분단 과정(양호민 한림대 석좌교수), 한국의 정치 발전(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북한 정치(유호열 고려대 교수), 한·미동맹(차상철 충남대 교수), 주체사상의 형성과 쇠망(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을 담았다. 이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다시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고등학교 고학년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서를 지향한다.”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에서 준비했다.
<한겨레> 사회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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