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7 18:30
수정 : 2005.01.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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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소방항공대가 보유한 14인승 헬리콥터(AS 365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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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상 헬기장’ 19%만 14인승 착륙가능
63빌딩·타워팰리스G동도 5인승말곤 못내려
지난 23일 아침 6시34분께 서울 성동구에 있는 19층짜리 성수아카데미타워.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길과 연기를 피해 16명이 옥상으로 황급히 대피했다. 서울시 소방항공대에서 14인승 구조 헬리콥터가 출동했지만, 정작 옥상에 있어야 할 헬기 착륙장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헬기는 착륙하지 못하고 인명구조낭을 통해 6번에 걸쳐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 했다. 조종사는 “헬리콥터가 착륙했으면 순식간에 끝날 수 있었던 구조활동이었다”며 “화재 규모가 작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층빌딩 옥상에 설치하도록 돼 있는 헬리포트(화재 발생 때 인명구조를 위한 헬리콥터 이착륙장)의 상당수가 인명구조용 헬기가 이착륙하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호텔이나 수십층에 이르는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에서 이런 문제점이 두드러져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사실은 서울시 소방항공대가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208개 헬기장을 현장조사한 ‘고층건물 옥상헬기장 현황’ 자료에서 드러났다. 항공구조대는 보유한 헬기 크기 및 주변 장애물에 따른 착륙 여건에 따라 A·B·C·D 4개 등급으로 헬기장을 나눴다.
자료를 보면, 착륙장 주변에 충분한 공간이 갖춰져 14인승 대형 헬기의 주야간 이착륙이 가능한 곳(A등급)은 전체 208개 헬기장 가운데 18.8%인 39곳에 불과했다. 반면 5인승 소형 헬기만 이착륙이 가능하거나 이마저도 어려워 인명구조낭을 사용해야 하는 곳(C등급)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132곳(63.5%)에 이르렀다. 7인승 헬기의 주야간 이착륙이 가능한 곳(B등급)은 37곳(17.8%)이었다. 헬기를 통한 인명구조가 불가능한 곳(D등급)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헬기장이 설치된 서울시내 17개 호텔 가운데 코엑스인터컨티넨탈·오크우드 프리미어·팔레스 호텔이 A등급, 코리아나호텔이 B등급을 받았을 뿐, 프라자·롯데·힐튼·조선·신라·쉐라톤워커힐·하얏트·그랜드인터컨티넨탈·라마다르네상스·메리어트 호텔 등은 사실상의 최하 등급인 C등급을 받았다.
한편 대우 트럼프월드 4개동(34~41층, 여의도), 아이파크 3개동(38~46층, 삼성동), 현대 파크빌(36층, 구로동), 롯데 스카이(36층, 봉천동), 현대 하이페리온 3개동(54~69층, 목동), 대림 아크로빌(46층, 도곡동) 등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대부분과 63빌딩·타워팰리스 G동(69층)·D동(42층)도 5인승 소형 헬기만이 구조활동을 펼 수 있는 C등급이 주어졌다. 5인승 헬기의 탑승인원은 조종사와 정비사를 제외하면 많아야 2~3명에 불과하며 인명구조낭을 사용해도 한 번에 4명(구조원 1명 포함) 정도밖에 실을 수가 없다.
반면, 법적으로 헬기장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건물 가운데 24곳이 헬기장을 설치했으며 이 가운데 7곳이 A등급을 받아 대조를 보였다. 또, 1971년 화재로 167명이 숨졌던 서울 중구 대연각호텔 건물(현 대연각센터)에 설치된 헬기장도 A등급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소방항공대 관계자는 “구조 사다리가 닿지 않는 고층건물 화재에서 헬기는 가장 효과적인 구조수단이며, 특히 대형 헬기는 신속하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며 “고층건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헬기장의 중요성에 대한 건축주의 인식은 ‘건물 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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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불이 난 서울 성수동의 고층건물 옥상. 이 건물은 11층 이상, 바닥면적이 1만3000㎡로 헬기장 설치 대상이지만, 건물 옥상에는 헬기장이 없으며, 헬리콥터가 착륙할 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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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피뢰침도 걸리적
현행 건축법은 11층 이상 건물 가운데 11층 이상의 바닥면적 합계가 1만㎡ 이상의 건축물에는 반드시 헬기 이착륙장(헬리포트)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헬기장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22m 이상으로 만들어야 하며 옥상 크기가 작을 경우 15m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은 이 규정을 악용해 최소 규격으로 헬기장을 설치하고 있다. 특히 2003년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최소 10m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어, 현재 대부분의 건물이 이 규격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헬기장 크기 못지않게 주변 장애물도 구조활동을 어렵게 한다. 소방항공대 관계자는 “착륙장 공간이 확보되더라도 간판이나 안테나, 피뢰침, 방공포대, 옥상난간 등의 장애물 때문에 착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나중에 생긴 고층건물이 기존 건물을 둘러싸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축방재학 전문가들은 야간 조명설비 확보와 함께 건물 준공 뒤 설치된 광고물이나 안테나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3일 불이 난 서울 성수아카데미타워는 11층 이상 바닥면적이 1만3000㎡로 헬기장 설치 대상이다. 관할 구청은 “건축물 대장에는 헬리포트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밝혔지만, 헬리콥터 조종사는 “착륙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후 관리가 전혀 안 된 탓이다. 소방항공대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착륙장이 허다해 구조활동은 물론 헬기 안전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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