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28 15:24 수정 : 2005.01.28 15:24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현재의 현판과 비문에서 집자한 정조의 글씨로 재구성해본 현판.



[패러디] 개그콘서트 - 웃찾사 모드로 풀어본 ‘광화문’ 현판

조선의 대표적 궁궐인 경복궁 복원사업이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둘러싼 논쟁으로 옮아가,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었다. 광복 60돌을 맞는 2005년 벽두 한국사회는 “광화문 현판글씨”의 역사성을 두고 치열한 상징투쟁을 벌이고 있다.

김영삼정권 때인 1995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부분인 광화문 현판 복원이 오늘의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이 문제를 더이상 문화재 복원의 차원에서만 다룰 수 없게 만들었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는 시 ‘광화문’에서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고 읊었다. 1922년 일본의 문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헐리려는 일제시대의 광화문을 두고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그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애통해 했다.

미당의 운문처럼, ‘광화문’은 종교와 같은 상징을 넘어섰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현판에 쿠데타로 집권한 만주군 장교 출신 독재자의 글씨를 그대로 둘까 말까를 두고 펼치는 상징다툼은 지난 시절 문사들의 애닮과는 다른 차원이다.

광화문 복원보다 독재자의 글씨도 역사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코미디와 닮았다. 광화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패러디로 재구성해보았다.

단, 아래의 패러디는 개그콘서트와 웃찾사 폭소클럽 등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은 분들께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한번 빠져보시겠습니까?
‘문루 위 현판이 보루된 사연!’
자~들어갑니다!

옛날 옛적에 ‘光化門’이 있었죠. 여기서 ‘光化門’(광화문)은 온 국민이 다 아는 한국의 대명사죠. 그런데 이게 불타 없어졌죠. 장난하냐? 장난해!

불탔는데, 언제죠? 한국전쟁 때.
왜죠? “신상명세서, 광화문 재질-나무”. 알다시피 나무는 훨훨 잘 타는 불때기 관용어죠.

▲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제막식 당시 올렸던 친필 현판(왼쪽)과 이듬해 3월 다시 고친 현재의 현판(오른쪽). 한눈에도 필체가 구별된다. 노형석 기자, <정부기록사진집>


그래서 ‘복원’ 정도는 해주는 센스, 기본이죠!
언제요? 1968년 12월. 누가요? 요게 중요하죠. ‘박정희 대통령 각하’
콘크리트로 쫘악 발랐죠. 여기서 콘크리트는 신속, 튼튼 접속사죠.

각하는 콘크리트를 사랑하죠?
“신상명세서-경부고속도로 건설”.

콘크리트로 쫘악 바르기만 하면 끝? 생뚱 맞죠?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인 光化門 위에다 문루 정도는 얹어주는 센스, 기본이죠!

-그런데, 옆에 있는 나무 널조각은 뭐하는 데 쓰는 거죠?
=네, 이건 문루에 내거는 현판이죠.
-여기에 글씨는 누가 쓰는 거죠?
=박정희 대통령 각하죠.
-아~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현판에 글을 쓰셨죠. 광화문. 여기서 광화문은 우리말 대명사, 한글이죠. 1865년 경복궁 재건 때 원래 현판은 서화가 정학교씨가 쓴 한자체였죠. 그런데 바뀌었죠! 각하의 현판 글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한글이죠. 거참, 희한하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인 광화문 현판을 교체한다는 방침이 공개되자 각계각층의 의견이 봇물넘치듯 쏟아지고 있다. 1968년 12월 열린 광화문 준공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국정홍보처 발행 <정부기록사진집> 중에서.


여기서 하나 더! 각하의 취향은 그때 그때 달라요.
3개월 뒤 69년 3월, 각하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글자가 마음에 안들어, 콱!”

광화문 현판을 갈았죠.
돋을새김으로 새겼던 원래의 친필 글씨를 밀어버린 뒤, 현판을 다시 파서 새 글씨를 돋을새김했죠.획이 툭툭 끊어지는 예서체 형식의 투박하고 삭막한 글씨체가 행서체에 해당하는 흘림 궁서체가 됐죠.
이래도 안 멋있어? 안 웃으면 바보!

이렇게 궁과 궁궐문에 대한 각하의 사랑은 각별했죠. 지도자로서 챙겨주는 센스, 기본이죠!
각하는 끝까지 궁을 사랑했죠. 각하가 김재규의 총탄에 떠난 곳도 궁정동. 각하는 궁정동 안가에서 “안가”라고 했겠지만, 떠났죠. 여기서 ‘안가’는 그때그때 달라요.

각하는 갔지만, 그래도 광화문은 남았죠. 그 자리에. 사실이야? 진짜야?
지난 1995년. 경복궁 복원계획을 세웠죠. 1997년에 확정된 경복궁 1차 복원사업, 현판도 바꾸기로 했죠. 거의 10년 전이죠. 2003년에는 공청회까지 거쳤죠. 브라보! 그런 거야? 정말이야?

그런데, 정책의 집행력은 그때 그때 달라요.
현판교체를 미뤘죠. 왜? 뜨거운 감자라고. 현판이 감자라고? 거참, 희한하네~.

미루다, 미루다 현판을 바꾸기로 했죠.
누가?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왜? 광복 60돌 행사가 경복궁에서 열리니까. 사실이야?

여기서 광화문은 현판교체 논쟁 감탄사죠. “아니, 각하의 친필 글씨를 뜯어내?”
현판교체는 보기따라 그때 그때 달라요.

“승자의 역사파괴다”
“박정희 죽이기 음모다”
“노무현 정권은 성웅 박 대통령 콤플렉스에 빠졌다”
“현미경을 대고 과거를 부정하려는 정치적 헤아림을 중단하라”
“돌아가신 분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 사람들(현 정권) 열등감 같아요”

여기서 이런 주장은 색안경 끼고보기 수식어죠. 장난하냐, 장난해?
광화문 현판 교체는 정당한 역사 복원으로 넘어가는 전치사죠.

“당신 아버지가 두렵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왜곡되고 잘못된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 잡자는 것이지요”

“비전문가인 권력자가 썼고, 원래 현판대로 쓴 글씨도 아니어서 현판 교체는 자연스런 역사적 순리다”

“1995년 총독부를 헐 때도 정치적 이유로 교체를 못한 난제를 이제야 푸는 것이다”

“광화문 건물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판이다. 옛것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노력을 문제삼기 어렵다”

“아부쟁이”, “어용학자”로 몰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억울 대명사죠. “황당하다”

“저는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청장일 따름이고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일 따름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를 뗀다는 사실 그거 하나에다 상징성을 놓고 시류하고 맞물려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저희는 경복궁의 정문을 제 모습을 갖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시기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조선 왕궁을 2009년까지 정비하는데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것은 다 고쳐가는 거거든요? 정문의 현판은 거의 문패와 얼굴에 가까워서 종래의 모습으로 바꾼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복원을 책임진 청장으로서 마땅히 할 일, 결정해놓고 미뤄온 일을 광복 60주년 행사장 관리인으로서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결국, 여기서 광화문은 기득권 세력의 지시 대명사, ‘보루’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이렇게 말했죠.
“기득권 세력은 ‘박정희 문제’를 일종의 ‘보루’로 여기는 것 같다. 박정희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정당성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겠느냐.”

문루 위 현판이 ‘보루’가 됐죠? 거참 희한하네~

오늘 기사 생뚱맞죠?
이 정도 시도는 이해해주는 센스, 기본이죠!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