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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8 18:15 수정 : 2005.01.28 18:15

새내기 교수의 “부당하다”호소

1996년 10월, 당시 서울대에 부임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새내기’ 김민수 교수는 ‘사고’를 쳤다. 서울대 개교 50돌 기념 학술대회에서 미술대학의 역사를 다룬 논문을 발표하면서, 장발 초대 학장과 동양화과 교수 출신의 장우성·노수현씨 등이 학계에서 친일 의혹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다른 학자가 쓴 논문을 인용한 것이다.

이는 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으로, 김 교수가 처음 소개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반발은 거셌다. 선배 교수들은 김 교수를 불러 해당 부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김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어떻게 임의로 삭제하느냐”며 거부했다.

2년 뒤인 98년, 김 교수는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재임용 대상자는 42명이었는데, 탈락자는 김 교수가 유일했다. 미술대학 쪽은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적이 부실했다’고 밝혔으나, 당시 김 교수가 제출한 저서와 논문은 재임용 기준인 2편의 4배인 8편이었다.

이런 조처가 부당하다고 본 서울대 교수 300여명이 복직 탄원서를 제출했고, 20여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제자들 사이에 ‘공부밖에 모르는 깐깐한 선생’으로 평가받던 김 교수는 어느새 ‘투사’가 되어 버렸다.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 교수의 논문은 99년 세계 유수 학술지에 버젓이 게재되었다.

“내가 ‘지구는 둥글다’고 말한 코페르니쿠스 같았어요. 진실을 왜곡하는 미술대와 이를 용인하는 서울대 본부의 작태에 6년이 넘는 세월을 싸우면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는 친일 역사를 생각해서라도 이 싸움을 굽힐 수가 없었어요.”

2002년 개혁 성향으로 알려진 정운찬 총장의 취임에 김 교수와 대책위는 희망을 걸었다. 정 총장이 속했던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는 사건 초기부터 김 교수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총장은 취임 뒤 “재임용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정 총장의 ‘태도 변화’에 대한 민교협과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정 총장은 “나는 취임 전에 김민수 교수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계속되는 법정소송 중에도 날마다 전화가 끊긴 연구실과 총장실 앞의 가건물에 출근해 연구를 계속했고, 그동안 저서 5권과 논문 20편을 발표했다. 동료 교수들과 하는 연대 강의 ‘디자인과 생활’은 무학점임에도, 학생들이 꾸준히 몰려 13학기째 계속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엄청 추웠던 지난겨울 아침 어느날 와보니, 선생님이 물이 얼어붙은 천막 안에서 책을 읽고 계셨어요. 말을 잃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학생대책위 소속 학생의 말이다.

법정으로 간 김 교수는 2000년 1월, 1심에서 ‘교수 재임용도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판결을 이끌어냈고, 이는 교원 재임용 관련 법률의 개정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어 2심에서는 ‘행정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패소했으나, 지난해 4월 대법원은 이를 뒤엎고 파기환송했고, 28일 고등법원은 다시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 뒤 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는 학문의 자유와 공공성을 훼손하고도 국민의 세금으로 소모적인 소송을 계속해 왔다”며 “이런 국가적 손실과, 나의 잃어버린 6년 반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함께 나온 황상익 교수노조 위원장(서울대 의대)은 “고등법원에서 김 교수가 재임용 기준을 통과했다고 밝힌 만큼, 서울대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조속히 김 교수를 복직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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