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 “꺼져가는 생명의 아픔을 봐달라”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과 공정한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다 최근 종적을 감췄던 지율 스님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 3층 염화실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초동 정토회관서 “죽더라도…” 단식 계속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 중단과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며 96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는 지율스님이 30일부터 서초구 서초동 정토회관에 자리를 잡고 단식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지율스님은 지난 21일부터 갑자기 종적을 감춰 주변 사람들의 애를 태웠으나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서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확인돼 조계종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등이 설득해서 29일 밤 정토회관 염화실로 단식 장소를 옮겼다.

법륜스님 등 시민·종교단체 관계자들은 30일 정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만큼 현명한 해법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라며 스님이 거처를 옮긴 것을 밝히고 “지율스님을 살려달라”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00일 가까운 지율 스님의 단식을 보며 사람들은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갈 때까지 가보자며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며 “옳다 그르다는 판단보다 꺼져가는 생명의 아픔을 바라봐달라”고 호소했다. 또 “토목공사는 진행하되 발파 공사를 3개월간 보류하고 그 기간 동안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해달라는 요구 단 하나도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냐”며 “생명에 대한 현 정부의 결단을 통해 우리도 위대한 정부와 지도자를 갖고 있다는 희망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법륜스님은 지율스님의 상태에 대해서 “아직 절대절명의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지금 현재 상태가 아니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에게 잠깐 공개된 지율스님은 창백한 안색으로 눈을 감고 있었으며 취재진이 방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지율스님과 생명평화를 위한 종교인참회기도 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도법스님은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면서 정부와 지율스님 모두의 마음이 상처를 입고 얼어붙었다”며 “지율스님의 외침에 정부가 공명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지율스님도 여기에 공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율스님이 잘못됐을 경우 절대적 가치인 생명의 문제가 이렇게 함부로 취급된 것을 지켜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상실감은 또 얼마나 크겠냐”며 “정부는 지율스님과 국민들의 호소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에는 법륜스님과 도법스님, 도롱뇽소송인단 대표 박영관 부산시 교육위원, 이수일 전교조위원장, 이동원 천구교 환경연대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겨레> 사회부 이형섭 기자 [e-mail].

	▲ 조계종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오른쪽)등이 30일 오전 정토회관에서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며 단식하다 종적을 감춘 지율스님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

		기자회견 연 정토회 법륜스님 일문일답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에게 단식 장소를 제공한 조계종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은 30일 정토회관에서 기자회견을열고 "병원으로 가자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스님께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법륜스님과의 일문일답. --스님을 정토회로 모시게 된 배경은. △오랜 기간 단식으로 생명이 위험한 스님을 안정된 공간으로 모시는게 필요하다고 봤다. 실은 어젯밤까지 스님을 병원으로 모시고자 간곡히 부탁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해 차선책으로 정토회관으로 모시기로 했다. 스님은 정토회측이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행방을 9일 동안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어제까지 가능한 한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공개를 하지 못했다. --지율스님은 어디에 계시나. △회관 3층 염화실에 계시다. 염화실은 조실스님(큰스님)이 쓰시는 방으로 화장실이 딸려있다. 스님의 거동을 돕는 여성 수행자 2명을 배치했다. --지율스님 건강은 어떤 상황인가. △많은 이들이 단식을 40~50일 하면 살지 못한다고 하는데 불교적으로 말하면 그런 주장은 세속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식을 이어 가더라도 정신적 번뇌가 없으면 에너지 소모량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밖에서 보면 기적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단식은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는 끓인 물과 약간의 소금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듣기로는 단식 중간에 차를 약간 드셨으며 `초록의 공명' CD 작업 기간에 약간의 커피를 설탕없이 드셨다고 한다. 정신력이 워낙 강하신 분이다. 43일 동안 매일 3천배를 했고 천성산을 400번도넘게 오르내리셨으며 단식도 모두 200일 넘게 하셨다. 그만큼 집념이 강하시다. 아무리 그래도 건강이 무한히 계속될 수 없다. 현재 절체절명의 순간은 아니고 하루에도 조금씩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단 단식이 계속될 경우 한계를 넘으면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그상황에 이를까 걱정된다. --천성산 문제는 어떻게 보나. △ 이번 일을 바라보면서 한 수행자가 단식으로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사회전체와 중생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단체가 이 문제를 방관해서 스님이 만일 돌아가신다면 그 뒤에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제 누가 옳고 그르고 따지지 말고 해법을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