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0 20:13
수정 : 2005.01.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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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씨가 선친의 유품인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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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한, 뒤늦은 보상이라도”
“끝내 강제징용의 한을 풀지 못하고 눈을 감은 선친(유을용·1980년 사망)의 뜻을 잇고 싶습니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사는 유영호(52·보일러공)씨는 선친의 유품으로 보관해 오던 강제징용자 2600여명의 명단과 박정희 전 대통령 앞으로 보낸 진정서 등 관련 자료를 최근 공개했다.
필사본으로 작성된 이 명부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전국에서 강제징발 돼,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일본군 8887부대 등에서 군속으로 노역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실려있다. 유씨는 “선친한테서 이 명단을 귀국할 때 지니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5·16 쿠데타 뒤 한-일 협정이 추진되자 강제동원 피해자들 사이에 보상을 받기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유씨의 아버지도 성주군 일대에서 강제징용된 70여명을 규합해 계를 만든 뒤 1964년 박정희 전대통령 앞으로 ‘충승도 징발자 영남지구추진위원회’ 명의의 진정서를 내고 받지못한 노임 등에 대한 보상을 청구했다.
유씨의 아버지는 진정서에서 “보급이 단절되고 초근목피와 식수마저 없어 전사상자의 사혈로서 기갈을 면하는 등 금수취급을 당하면서 2년여의 징발·포로생활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귀국했다”고 당시의 고초를 설명했다. 또 “한-일 회담에서 억울한 우리에게 생명의 대가와 동등한 보수를 받도록 해 국민으로서 재생의 길을 개척토록 해달라”고 보상에 강한 기대를 나타냈다.
유씨는 “선친은 그 뒤에도 여러차례 진정을 냈으나 정부로부터 우표 두 장이 든 형식적인 답신을 몇차례 받았을 뿐 끝내 보상은 받지 못한 채 한을 품고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 한-일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 행사를 정부가 사실상 봉쇄했다는 소식 등을 접하고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이 자료를 다시 끄집어냈다.
이번에 공개한 명단은 일제하 강제동원 추정 인원 151만여명 가운데 정부가 이미 파악하고 있는 48만여명에 대부분 포함됐으나, 유가족들이 최근 또 다시 권리회복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의의가 있다.
유씨는 “정부가 당사자들의 동의없이 배상문제를 마음대로 처리한 것은 잘못”이라며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됐으니 뒤늦게라도 보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02-2100-8413~6)는 1931년 만주 사변부터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강제동원 등의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진상조사 신청 및 피해신고를 2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접수한다.
성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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