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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당시 궁정동 안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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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안가 전직원 인터뷰
1970년대 ‘중앙정보부 안가’ 최근 발간된 <한겨레21> 제546호(설 합본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은밀하게 이용했던 이른바 ‘안가’(안전가옥)에서 근무했던 전 중앙정보부 직원의 증언을 보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안가 근무 직원의 인터뷰는 언론사상 처음인데다, 그가 10·26 사건을 통해 비로소 그 은밀한 장막의 일부가 벗겨졌던 안가의 규모와 운영실태 등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증언해 눈길을 끈다. 1970년대 한때 안가에서 근무했던 이 직원은 인터뷰에서, “안가는 대통령이 사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경우 술자리를 하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10·26 사건으로 여성이 접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가의 운영 목적이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처럼 여자들을 합숙시키는 곳은 없었다”면서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100여명씩을 보유한 ‘손이 큰’ 마담 2명이 여자들을 주로 조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연회 접대 여성들은 마담들이 추천하면 중정 직원이 ‘면접’을 봤고 외모와 경력 등을 따져본 뒤 입이 무거울 것으로 보이는 여성 위주로 선택해 수발을 들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여성에게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접대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찾으면 만류해 보다가 잘 안 되면 추가로 딱 한 번만 더 접대하도록 한다”고 나름의 원칙을 설명했다. 그는 안가에는 정·재계를 비롯해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전했다. “수출에 기여한 기업인이나 정치인, 고위 공직자, 학자 등을 안가로 불러들였다. 고인이 된 한 그룹의 총수는 대통령의 격려를 받으면서 지원을 부탁해 기업을 눈부시게 키워나갔다”고 밝혀, 안가가 ‘밤의 정치’가 이뤄졌던 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박 전 대통령은 딱딱한 분위기의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아 경호실처럼 경직된 조직이 아닌 중정에서 안가 관리를 직접 담당했으며, 10·26이 일어난 궁정동 안가가 가깝고 규모가 커 자주 이용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모든 안가는 대통령이 불시에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24시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다”며 “안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서울 궁정동말고도 한남동·구기동·청운동·삼청동 등에 5~6곳이 더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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