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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1 18:18 수정 : 2005.02.01 18:18

[연재순서]
①정착촌에 갖힌 2세들
②거리의 재가 환자들
③다 말하지 못한 역사
④차별과 편견을 넘어

“소록도? 죽게 되면 그때나 가겠소!”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동 쪽방촌에서 만난 한센병력자 유정호(50·이하 모두 가명)씨는 찡그린 얼굴로 거푸 담배 연기만 내품었다. 두평이 될까말까 한 그의 집은 영등포 쪽방촌에서도 제일 허름해 보이는 4층 구석 다락방. 그는 한센병 때문에 생긴 합병증으로 다리가 점점 썩어들어가는 버거씨병과 백혈병, 당뇨 등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방 한 구석에는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는 넘는 약봉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정씨가 소록도에서 나온 것은 지난 1987년. 이후 원주 ㄷ, 대구 ㅇ 등 한센인 정착촌에 잠시 머물렀지만, 적응에 실패하고 1988년 이곳으로 밀려왔다. 쪽방 생활은 올해로 17년째다. 자유를 얻은 대가로 그의 몸은 만신창이로 변했다.

그는 한사코 “소록도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소록도에서 그는 환자 전용 배인 ‘구라호’를 몰았다. 국립소록도병원 직원들은 환자들에게 나온 쌀·기름 등을 밖에 몰래 내다 팔아 부수입을 챙겼다. 정씨는 이에 항의하다 자주 감금실에 갖혔다고 했다. 현재 공식적인 그의 직업은 노점상이지만, 실제로는 서울역, 영등포역 주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볼펜·사인펜·인주 등을 파는 ‘구걸’이다.


▲ 한센병력자 유정호(50·가명)씨가 영등포구 영등포1동 쪽방촌 4층 다락방에서 한빛복지협회 관계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유씨는 “약 먹고 방세 내려면 한달에 100만원은 필요하다”며 “영등포역 주변 건물을 돌아다니며 구걸해 그 돈을 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2004년 펴낸 ‘한센사업안내’를 보면, 2003년 말 현재 전체 한센 등록자 1만6801명 가운데 국립소록도병원 같은 입원·보호 시설이나, 전국 88개 한센인 정착촌에 살지 않는 ‘재가 환자’는 9280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에 한센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서 버림 받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구걸’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영등포 쪽방에만도 300여명의 한센인들이 모여 살았지만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가 이들을 경기 북부 지역으로 내몰아 지금은 10여명이 세상의 눈길을 피해 숨어 산다. 보건복지부는 재가 환자들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해, 정부가 60살 이상(여자 55살 이상) 한센인들에게 마련해 둔 생활지원금(1년에 146만6천원)은 그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또 다른 한센인 김대수(62·서울 강서구 방화동)씨는 “4년 전부터 경비일을 해보려고 10군데 넘게 원서를 냈는데 소식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82살이나 된 노모를 모셔야 하는 그는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경비원 채용시험에 합격했다가 건강 진단과정에서 수 없이 고배를 마신 뒤, 이제는 구직을 완전히 포기했다.

정부가 그에게 주는 돈은 장애인 수당, 노인 수당 등을 합쳐 50만원 정도. 그나마 손발이 불편한 한센인들이 지체장애인으로 등록된 것은 10년 전인 1994년이다. 그는 “이 돈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어” 영등포역 주변에서 구걸로 노모를 봉양하고 있다. 부인과 딸 셋이 있었지만,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했다가 1980년 초에 이혼한 뒤 지금껏 연락이 없다. 그는 “서로가 불편해 아예 연락을 끊고 산다”고 말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병준(52·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20) 생각만 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두달 전 서울 성북구 종암동 쪽방촌을 탈출해 영구임대아파트로 입주할 때만 해도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얼마 전 딸이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하면서 “따로 나가 살고 싶다”는 의견을 넌지시 건네왔다. 이씨는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당혹스럽다”며 “그동안 저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견뎌온 날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믿었던 가족들에게 버림 받은 환자들은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11월9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에서 한센병 환자 조민수(사망 당시 64)씨는 숨진 지 8개월 만에 발견됐다. 사회복지사 이루지(27)씨가 열쇠공을 불러 기척 없는 문을 열었다. 방안은 주검 썩은 냄새로 진동했다. 주검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전력이 요금을 못낸 조씨의 방에 전기를 끊어놓은 상태여서, 경찰은 촛불을 켜고 방안에 들어가 수사를 마쳤다. 그의 형(69)은 “아홉 달 쯤 전에 동생이 전화를 걸어온 뒤 소식이 없었다”며 “그동안 으레 그렇게 살아와 무사히 잘 사는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대구에 산다는 그의 부인과 딸은 끝내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우홍선 한빛복지협회 본부장은 “가족에게 버림 받은 한센인 대부분은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센인 유정호씨는 “요즘은 날이 추워 일을 잘 못나간다”며 “희망 없는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다”고 쓰게 웃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정부, 생활실태 파악·특별수당 지급해야”

■ 재가환자 대책은

장운선 한빛복지협회 서울·중부지부 사무장은 한달에도 몇 번씩 경찰서로 불려가는 게 일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한센사업안내’가 못박은 그의 업무는 △주거가 불분명한 한센등록자의 선도 사업 △불법행위 단속 및 계몽 △자활정착사업 방해자 지도 등이다. 그는 “쉽게 말해, 구걸하다 걸려 경찰서로 잡혀 온 사람들을 데려다 밥 먹이고 집에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장 사무장이 불려 나간 횟수는 기록해 둔 것만 18건에 이른다. 서울 서초동 ㅊ교회, ㅅ교회, ㄱ법무사 사무실, ㄱ경찰서 형사계, ㄱ도청 보건과 등에서 “한센인이 와서 구걸을 하고 있으니 데려가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는 “먹고 살게 없어 구걸하는 사람들을 어쩌겠냐”며 “둘이 부둥켜 안고 엉엉 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센인들의 인권보호단체인 한빛복지협회는 “재가환자들의 생활 실태에 대한 전면 조사를 벌이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밝혔다. 재가 한센인들에 대한 치료는 한센복지협회 소속 전국 13개 병원이 맡고 있지만, 환자들이 병원 찾기를 꺼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장 사무장은 “사회 차별로 직업을 못 찾거나 가족들에게 버려져 혼자 사는 한센인들에게는 일본 처럼 ‘특별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쪽방 등 열악한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자격을 주고, 노동 능력을 잃은 사람들은 설득해 소록도로 옮기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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