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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분열·논쟁 장기화땐 국익 해쳐
강원-충청-호남축 미래산업 배치를 박 지사는 서남해안에 복합레저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은 “상해와 남중국 등을 향해 큰 그림을 그리려는 것”이라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3일 전남도청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했으나 그 뒤 정부여당의 행정중심도시안이 확정되면서 일부 내용에 대해 추가 인터뷰가 이뤄졌다. ‘수도권 살리기’ 관점서 접근을 -정부 여당이 행정수도 대안으로 마련한 행정중심도시안을 어떻게 보는가?
=도시의 명칭이 어떻든 실질적으로 중앙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로 지역이 분열되고 논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또 정부가 마련한 대안이 이 지역에 도움이 될지 계산해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발상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특정지역의 이해관계 보다 국가 전체의 발전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 도시의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서로 고집 피우지 말아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도시가 ‘계급화’된 나라는 없지 않느냐. 이런 접근 자체가 모두 과거적 발상에 불과하다. -행정도시 건설이 국가균형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 수도권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한다. 국토의 12% 정도인 수도권에 국민의 47%, 전국 제조업체의 56%가 집중돼 있다. 30여년동안 수도권에 권력과 기회·돈·문화가 몰린 것이다. 수도권의 집값은 뛰고 아파트는 초고층화되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삶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출퇴근하며 거리에 하루 2~3시간을 버리고 있지 않느냐. 행정수도 대안은 지역균형 발전 전략이라기 보다, 수도권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그동안 이러한 논리로 행정수도 문제를 추진해나가야 하는데 정부가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했다. 다만 세계 각국의 역사를 보면, 육지보다 바다에 위치한 도시가 흥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우리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위치를 선정했더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전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하는 견해가 많은데. =서울은 이제 행정기능을 일부 옮겨가도 경제 중심지로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 워싱턴이 미국의 수도지만, 뉴욕이 경제 중심지의 역학을 하고 있지 않느냐. 거시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솔직히 서울 땅 값이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희생돼야 하는 것이냐. 그것은 서울 이기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행정기능을 이전하는 것은 서울과 지방 모두에게 상생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으로선 선출직이라는 점과 한나라당 당론 때문에 판단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올해로 지방자치제가 시작된지 10년인데, 지방자치가 잘되고 있는가요? =지방자치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시·군 등 기초자치단체까지 자치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광역시 구의 경우 그런 생각이 듭니다. 광역시에서 구청장과 기초의원을 두다보니, 경우에 따라선 동일한 시설을 중복투자하는 등 비효율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군 등 기초자치단체의 자치를 꾸준히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국민의 정부 때 중앙정부의 권한 상당 부분이 위임됐지만, 이제 더 많은 권한이 이양돼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지방자치도 점차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지방분권 실현은 재정분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서울의 재정자립도가 90%면 전남은 11% 수준인데도, 법인세를 지방으로 돌리면 우리는 빈사상태다 됩니다. 지역간 불균형 상태를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할 사안입니다. 지방중소기업청, 지방환경청 등 9개 특별지방행정기관은 지방자치단체 업무와 중복되므로 과감하게 권한이 이전돼야 합니다. 중앙정부 권한 더 이양돼야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를 평가한다면 어느 정도 점수를 줄 것인가? =말만 무성하지 별로 한 것이 없다. 지방분권을 향한 이상에는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50점이 될까 모르겠다. 아무리 의지가 좋더라도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간 불균등 발전도 앞으로 해결돼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권-영남 축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경제를 살리자며 사회간접시설을 투자할 때도 수도권 중심이다. 영남권은 산업화 과정에서 불균형 문제가 다른 지역에 견줘, 덜한 편이다. 이제 정부가 미래산업을 강원과 충청, 호남으로 이어지는 축으로 집중 배치해야 한다. 정부 투자에 밸런스를 맞춰줘야 할 때다. 호남에는 아이티(정보산업), 비티(생명산업),나노산업 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공공기관 이전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전남에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등 아이티 관련 기관이나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등 생물분야 공공기관이 대거 이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역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구상은 있는가? =전남이 갖고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생명산업과 해양 바이오산업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김이나 미역을 생산해 그대로 팔았지만, 이제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여 보자는 것이다. 또 전남에는 섬이 1969개나 된다. 물이 섬 사이로 흐르는지, 섬이 물사이를 떠가는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 서남해안 다도해다. 섬과 해안, 갯벌을 연계한 관광상품을 만들어 가겠다. 앞으로 해양관광이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제이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이는데. =복합 레저관광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해남 산이면과 영암 삼호읍 일대 3200만평에 50만명 규모의 레저형 도시를 건설하려고 한다. 단순히 골프장 등 위락시설만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규모 해양테마파크와 실버타운 등이 들어선다. 여가도 즐기고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좋으면서, 비지니스에도 맞춤인 그런 도시다. 사실 국내 수요 뿐 아니라 남중국과 상해권을 겨냥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해양관광 중요해질 것 -해외투자에 전부 의존하면 재원마련이 쉽지 않을텐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정부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해외 여기저기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기도 하다. 싱가폴·중동권·일본·미국·중국 등 5개국 기업들이 투자의향을 갖고 현지를 다녀갔다. 국내기업들도 외국 자본이 몰리면 서로 투자를 할려고 할 것이다. 전남도와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관광공사·농업기반공사·토지공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올 5월 1일 이전까지 300만평 규모에 시범사업 추진업체를 확정하겠다. -지역의 효율적 발전을 위해 시·도통합이 과감하게 추진돼야 하지 않을지? =기본적으로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부에선 내가 통합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하지만 광주와 전남이 광역시와 도간 통합 문제를 앞장서서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 문제로 광주와 전남이 서로 찬반으로 나뉘어 얻을 것이 없다. 현재 대구는 통합에 반대하고, 경북은 찬성하고 있지 않느냐. 충청권도 대전은 반대하고, 충남은 찬성한다. 결국 시·도 통합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중시하는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올해 친환경농업의 첫걸음을 뗐다. 2009년까지 읍·면 지역을 통째로 유기농 농업지구로 조성할 생각이다. 친환경농업은 수도권만 타겟으로 한 것은 아니다. 장차 일본 시장을 뚫고 가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평소 지방의 문화분권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서구 문물이 들어와도 민족의 정신은 문화에 있다. 문화가 없으면 정신이 없어지고 정체성을 잃게 된다. 의식주만 보더라도 많이 변했지 않느냐. 전남은 소리와 서예, 남종산수화 등 예술의 맥을 이어온 곳이다. 취임 공약으로 예술은행을 설립해 이들을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겠다. 앞으로 서남해안 해안가 등지에서 주택을 고치면 한옥을 많이 보급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조립형 목조 한옥을 개발했다. -현재 민주당 소속이고 전당대회가 곧 열리는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연정 또는 통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행정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인터뷰 뒤안길 정부의 행정수도 대안 마련에 대한 박준영 전남지사의 생각은 ‘중립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어떻게든 지방으로 중앙부처를 옮겨야 한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행정중심도시니, 다기능복합도시니 하는 도시 이름을 두고 정부여당이나 한나라당이 서로 고집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의 행정중심도시 방안에 대해 두가지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는 행정수도 이전 추진 논리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리기 전인 지난해 7월 목포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고 했다. 지방균형 발전 논리로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줄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부처를 이전하면,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산다”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6월 보궐선거
‘복합 레저도시’ 에 전력 둘째는 꼭 충청권 중에서 연기-공주가 적지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부처를 옮길 새 도시가 바다에 인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여야가 사용하는 행정수도니 행정중심도시니 복합도시니 하는 용어를 모두 배제하고 중립적 용어인 ‘새 도시’라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행정중심도시 건설로 가닥을 잡은 뒤에도,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정책을 묻자 박 지사는 종이에 한반도 지도를 그린 뒤, 엑스(X)자를 그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이제 서울-부산·경남 대신, 강원-충청-호남으로 이어지는 엑스자의 또다른 축에 미래산업을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중심도시 성사 여부보다, ‘제이프로젝트’로 압축되는 지역발전 정책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박 지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출발했다가 1980년 신군부 통치 시절 강제해직된 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복직했다. 이어 1999년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지난해 6월 박태영 전 전남지사의 유고로 치러진 전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민주당 구원투수로 등판해 당선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남지사로 일한 지 8개월 째. 그는 이날 지방의 주체적 발전론에 대해 ‘모범답안’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했다. “지방이 어려울 때 고향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 감사한다”고 말했다.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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