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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2 16:24 수정 : 2005.02.02 16:24

제주 한빛여성의쉼터에서 지내는 가정 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귀포시 고근산 정상에서 ‘행복명상’에 들어가기 전에 눈 덮인 한라산을 향해 선 채 몸을 풀고 있다



내 안의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고요히 눈을 감고 먼저 자신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을 향해 사랑을 보내세요.”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고근산 정상. 가정 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들의 피난처인 ‘한빛여성의쉼터’(원장 강미경) 입소자들 10여 명이 흰 눈을 이마에 인 한라산을 향해 편안히 앉았다. 자연 속 ‘행복명상’을 이끄는 강 원장의 말이 계속된다.

“다음에는 좋아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사랑을 보냅니다. 가족들, 부모, 형제, 자녀들을 생각하며 사랑을 보내 주세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무관심하게 대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보내세요.(…) 세상의 모든 생명을 향해 사랑을 보내고, 생명이 없는 모든 존재들에게도 사랑을 보내세요.(…)”

심신이 지친 어머니들 자연속 ‘행복명상’ 통해
자신을 사랑하기부터
모든 생명향해 사랑을 보내기
뒤켠 말없이 도와주는 손길에
모두 700여명 한줄기 빛 찾아

서귀포시 서호동에 자리한 지상 3층짜리 한빛여성의쉼터는 1999년 3월에 문을 열었다. 강미경 원장의 어머니인 한기옥씨가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평생 모은 재산이 바탕이 되었다. 서귀포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가출 여성, 미혼모, 성폭행 및 가정 폭력 피해자, 행려·노숙 여성 등을 상대로 10년간 상담했던 강 원장이 경험을 살려 직접 시설 운영에 나섰다.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의 직원이 힘을 모아 시설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쉼터의 숨은 주역은 뒷전에서 말없이 도움을 주는 후원자들입니다. 처음 개원할 때 실내 벽지와 커튼 색깔을 정해 주고 책장도 짜 준 ‘거리의 화가’들, 시장에서 매주 갓 구운 빵을 가져다 주시는 이웃 동네 빵집 아저씨, 아이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닭고기를 제공하시는 치킨집 아저씨 등이 두루 우리 쉼터의 진짜 주인들이시죠. 물론 500여 분에 이르는 후원회원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죠. 후원회원들 중에는 그 자신 쉼터를 거쳐 간 분들도 있어요.”


▲ 쉼터 2층 강당에 모인 입소자들이 5일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윤도현밴드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빛여성의쉼터에는 보통 10개 가정의 어머니와 자녀 20~30명 정도가 ‘상주’한다. 99년 개소 이후 지난해 말까지 모두 700명 가까운 어머니와 자녀들이 쉼터를 거쳐 갔다. 지금은 일종의 ‘비수기’라 어머니와 자녀 합쳐 12명이 살고 있다. 쉼터 입소에 자격 제한은 없다. 비용도 무료다. 입소한 여성과 자녀들에게는 가정 폭력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부부 및 가족상담, 글짓기와 미술치료, 다도와 꽃꽂이, 공예, 사이코 드라마, 텃밭 가꾸기와 된장 만들기 등등. 학령기의 자녀들은 인근 학교로 일시 전학이 가능하다. 한빛여성의쉼터는 특히 명상을 통한 자존감 회복과 행복 추구에 역점을 두고 있다. 주중에는 2층 강당에서 생활체조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주말에는 인근 고근산 등으로 자연 명상에 나선다.

“처음 쉼터를 찾아오는 어머니와 아이들은 가장의 폭력으로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쉼터에서는 그분들이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니까요. 특히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라서도 폭력적이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자녀 둘과 함께 쉼터에 입소한 이경미(가명)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그 스스로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남편에게 10년 이상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들어온 경우다. “쉼터에 와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먼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씨는 “이런 쉼터의 존재를 모르거나 주변에 알려지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으로 폭력을 참고 견디는 여성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강 원장은 “가정 내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 여성긴급전화(전국 어디서나 지역번호 없이 1366번)로 연락을 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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