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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 칼날 피해 가스총 겨누며 포위 “처녀, 산에 기도하러 왔나?” 서울 남부경찰서 강력2팀 이희정(26) 순경이 ‘관악산 다람쥐’ 차아무개(54·서울 금천구 시흥동)씨를 맞닥뜨린 것은 지난달 31일 오후 4시30분께다. 빛이 바랜 국방색 모자와 파란색 마스크를 쓴 50대 남자가 관악산 등산로에 있는 ‘삼신당 기도대’에서 등산객으로 위장해 잠복 근무를 서던 이 순경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관악산 다람쥐의 출몰이 잦은 이곳에 잠복 근무를 서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설 무렵이었다. 이 순경은 “순간 관악산에서 여자 등산객들을 골라 돈을 빼앗는 관악산 다람쥐을 만났다는 직감이 왔다”며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칼을 들이대며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눈 앞에 시퍼런 칼날이 어른거렸지만 이 순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날렵하게 호주머니 안에 있던 가스총을 꺼내 차씨를 겨누면서 높이 1.5m 아래 언덕으로 몸을 피했다. 이 순경의 고함소리를 듣고 몰려 온 안학순 경사 등 형사 5명이 곧 차씨를 둘러쌌다. 차씨는 사제 권총 2발을 쏘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가스총을 맞고 경찰에 붙잡혔다. 차씨는 경찰에서 “경영하던 ㅅ보안장비업체에 손님이 오지 않아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딸(26)과 아들(24)은 청년 실업난 탓에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14일 오후 5시40분께 서울 관악산 등산로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무속인 손아무개(38·여)씨를 사제총과 칼로 위협해 70만원을 빼앗아 달아나는 등 2003년 3월부터 지금까지 30차례에 걸쳐 1천여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남부경찰서는 2일 등산로에 몰래 숨어 혼자 다니는 등산객의 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로 차씨를 구속했다. 관악산을 찾는 여자 등산객들과 무속인들을 상대로 돈을 빼앗는 관악산 다람쥐가 출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 관악산 다람쥐가 등장한 것은 1993년 말이다. ‘원조’ 관악산 다람쥐 김아무개(당시 나이 26)씨는 1992년 5월부터 1994년 1월까지 관악산을 찾은 여자 등산객과 불공을 드리러 온 여신도 50여명을 상대로 2900만원을 빼앗고 13명을 성폭행했다.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당시 검찰은 서울 방배·남부·관악경찰서에 “관악산 다람쥐를 빨리 검거하라”며 특별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3년 뒤 김씨의 꼬리가 잡혔고, 그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관악산에 다시 다람쥐가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초부터다. 관악산 등산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산을 오르기가 무섭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003년 7월 관악산 다람쥐로 지목돼 경찰 수사를 받아오던 김아무개(당시 나이 48·서울 관악구 봉천동)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터지기도 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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