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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3 15:57 수정 : 2005.02.03 15:57

헌법재판소는 3일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핵심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호주제를 둘러싸고 장기간 제기됐던 숱한 사회적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헌재의 이날 결정은 호주제를 전제하지 않은 새로운 호적법 개정시까지 호주제 관련 민법 조항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한 만큼 국회에 계류중인 호주제 폐지법안의 조속한 처리 및 관련입법 보완을 촉구하는 기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결정배경=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민법 788조, 781조1항 일부분, 826조 3항 일부분 등 3개 조문이다.


788조는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해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면서 호주를 정의한 부분으로 호주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핵심조항이다.

781조 1항은 '자(子)는 부가(父家)에 입적한다'며 자의 입적, 826조 3항은 '처는 부의 가에 입적한다'며 부부간의 임무를 규정한 부분으로 이들 조항 역시 호주제유지를 위한 골격에 해당된다.

당초 법원의 위헌제청 대상은 788조와 781조 1항 일부분 2개였으나 헌재는 826조 3항 일부분도 호주제의 핵심조항 중 하나라고 판단, 직권으로 위헌심판 대상에 포함시켰다.

헌재가 이들 조항을 재판관 9명의 6대 3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본 것은 호주제가 헌법 36조1항의 양성평등의 원칙 및 인간존엄에 위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함으로써 많은 가족들의 불편과 고통을 불러오고 있다"며 "개인을 가족 내의 존엄한 인격체가 아니라 가(家)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를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남성우월주의를 반영한 대표적인 남녀차별 사례라는 것이다.

또한 남자가 혼인하면 자신의 가에 머물거나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의 가를 떠나 남편이 속한 가나 남편이 호주로 된 가의 가족원이 될 뿐이어서 처의 수동적.종속적 관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자녀의 부가 입적 조항 역시 부계혈통 우위의 사고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혼한 모가 자녀의 친권을 가지더라도 부가에 소속돼 아버지가 자녀의 호주로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점을 초래한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파장과 전망= 헌재가 호주제를 위헌으로 규정하면서도 최종 결론을 헌법불합치로 내린 것은 단순위헌 선고시 발생할 사회적 파장과 혼선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풀이된다.

호주제를 단순위헌이라고 선고하면 출생.혼인.취적.제적.분가 등 호적부상 변동을 불러오는 호적사무의 법적 근거가 한 순간 사라지는 셈이어서 호적사무의 큰 차질이 우려됐던 게 사실이다.

또한 국민들이 상속이나 연금 등 호적부에 따른 신분관계 증명이 필요한 사안에 있어서도 법률적 공백으로 인해 발생할 혼선이 불 보듯 뻔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호적사무를 관장하고 있는 대법원도 국회의 호주제 폐지법안 통과와는 무관하게 호적법 등 관련법률 손질 및 새로운 신분등록제도 구축에 따른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헌재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는 "호주제의 골격조항을 위헌으로 선고할 경우 현행 호적법이 그대로 시행되기 어렵고 신분관계를 공시.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중대한 공백이 발생한다"고 밝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음을 내비쳤다.

헌재가 민법상 호주제 관련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도 민법이 아닌 호적법 개정 시점까지 기존 법률의 효력을 인정한 점 역시 호적사무나 법률관계를 둘러싼 혼선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호적법이 민법상 호주제 관련조항을 근거로 구체적 사무처리 방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호적법 개정이나 새 보완법률이 마련되지 않는 한 즉각적인 적용은 힘든 상황이다.

이는 국회에서 논의중인 민법 개정안 역시 법안 공표후 2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는 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현재 대법원과 법무부는 '1인1적'을 골자로한 새 신분등록 방안 등을 포함한 보완입법을 마련중이며, 필요할 경우 위원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청취한 뒤 민법 개정안 통과시점에 맞춰 국회에 보완입법을 제출할 계획이다.

헌재의 이날 결정은 "입법자는 조속히 호적법을 개정해 위헌인 호주제의 잠정적인 지속을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고 결정문에 적시한 것처럼 국회에 계류중인 민법 개정안의 처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무부는 재작년 9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호주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의 소극적 태도로 법안 처리가 미뤄져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임채정 열린우리당 대표가 최근 2월 임시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을 처리키로 했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지난달 19일 "한나라당은 (찬성하는) 권고적 당론을 정했고 자유투표로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호주제 폐지법안의 국회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헌재의 이날 결정이 국회의 법안 처리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하지만 호주제 폐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 헌재가 국회보다 한발 먼저 선고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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