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2.04 16:45 수정 : 2005.02.04 16:45

“집이 대궐이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신청 8년 만에 이사를 한 이보영 할머니가 "안방이 대궐 같아" 라며 이사를 도와주던 자원봉사들 사이로 방바닥에 앉아 있다.



25년만의 설빔

따뜻한 이웃 정에 마음 편했던 무허가 둥지,
“막상 이사간다고 하니 왠지 서운하고 허전해”
짐이래야 뭐 있어 보따리 몇개 뿐이지.
아파트 들어서는 길 “우리집 정말 대궐같지”
깊게 팬 주름진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꽃 올해 설은 넉넉하겠네

“어젯밤에 얼마나 추운지 얼어 죽을 뻔 했어.”

내게도 열솨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아파트 열쇠 꾸러미를 받아들고 즐거워하는 할머니.
오랜만에 찾아든 맹추위 속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는 이보영(74)씨가 손끝을 분주히 놀리고 있다.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는 그는 올 들어 치솟은 기름값에 웬만한 추위에는 보일러를 틀지 못한 채 지내왔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의 무허가 건물에서 25년 동안 혼자 살아온 이씨는 얼마전 그동안 살고 있던 집에서 멀지 않은 영구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비록 무허가 건물이지만 수십년 살아오는 동안 이웃집 모두가 친구이자 가족처럼 지내 왔어. 집 근처에,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 줄 성당이 있어 마음이 편했는데, 이사를 간다고 하니 왠지 서운하고 허전하네.”

이씨는 이사 전날 저녁부터 조금씩 챙겨두었던 이삿짐 보따리를 하나둘 대문 밖으로 옮겨 놓았다. 동이 트자 이사를 도와줄 안양시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했다. 옆집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가 찾아와 가루비누와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며 “내가 다리가 아프지 않아야 이사를 도와 줄 텐데 …미안해요”라는 인사를 건네면서도, 이내 이씨가 부러운 시선이다.

일손거드는 자원봉사자들 안양시 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의 이사를 도와주고 있다.
이씨는 태어난 지 일곱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27년 전에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올라온 뒤로 먹고 살기 위해 궂은 일 가리지 않고 떠돌다보니 결혼마저 못하고 이렇게 혼자 살게 되었다. “25살엔가,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수녀원으로 인도하는 꿈을 꾼 뒤 정말로 수녀원에 들어갈 생각도 해봤어. 그런데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시절이라 세상이 어지러워 그것도 맘대로 되질 않았지.” 그러고는 그냥 이렇게 시간만 흘렀다고 했다.


나이 들어 혼자 사니 몸이 아플 때가 제일 견디기 힘들다는 그는, 몸 구석구석 어디 한군데 안 아픈 곳이 없다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전국적으로 집계된 홀몸노인 64만3천 여명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홀몸노인은 20만6600여명이나 된다. 건설교통부 공공주택과의 한 관계자는 입주신청에서 입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2년이라고 말하지만, 안양시 동안구의 경우에는 최소 5년에서 10년을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이씨는 8년 전에 영구임대아파트를 신청해 두었는데 이제야 입주하게 되었다며 연신 벙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묵은짐도 함께 할머니의 이삿짐은 1t 트럭도 다 채우지 못한 이불보따리 2개, 선풍기 등이 전부였다.



“대궐 같아! 여보게, 우리집 정말 대궐 같지?” 아파트에 들어선 이씨가 자원봉사자들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1t 트럭도 다 채우지 못한 이삿짐은 옷가지와 이불 보따리 2개 그리고 냄비 한개 등이 전부다. 이삿짐을 옮기고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설이 다가온다. 이씨는 지난해 설처럼 올해도 혼자서 설을 맞이한다. 그나마 바람 술술 들어오는 무허가 건물이 아닌 대궐같은 임대아파트에서.

사진·글 김봉규 기자bong9@hani.co.kr

거북 등처럼 무의탁으로 살아온 할머니의 손바닥은 살아온 역경을 이야기하듯 주름살이 깊어 보인다.




헤어진 내복에 지난 삶이… 이사 전날 난방도 되지 않은 부엌 벽면에 올겨울을 이겨낼 내복이 걸려 있다.




하나뿐인 부엌세간 할머니의 부엌세간은 양은 냄비 하나가 전부였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