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 비정규직 현황…’ 토론회】
파견·도급, 자회사, 특수고용…‘비정규직 백화점’
도급업체만 2년마다 옮기는 ‘서류상 이직’ 흔해
소속 변경 불이익에 오래 근무하면 소득 줄기도
수당 연계 임금시스템으로 장시간 노동 일반화
“산별 차원 대응 중요…가시적 작은 성과부터”
#1. 2013년부터 보험사에서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남재권(가명)씨는 7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지만, 6개월 전 입사한 후배와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일반 정규직과 달리 근무연수가 쌓여도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이다. 남씨는 연차수당 지급을 회사에 요청해봤지만 ‘(무기계약직) 직군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민원인들에게 ‘실장’이라고 소개하지만 사내 공식적인 직급은 없다. 그는 “(고용은 안정돼 있다지만) 임금(인상)과 승진, 직급이 없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정인(가명)씨는 6년 전 한 카드사 콜센터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계약기간 2년 만료 뒤 그는 카드사 콜센터 업무를 위탁받은 도급업체로 소속을 바꿨다. 하는 일은 그대로였지만 도급사로 ‘내려가며’ 연봉이 1천만원가량 줄었다. 최근엔 일하던 도급업체가 경쟁입찰에서 탈락해, 콜센터 업무를 위탁받은 또 다른 도급업체로 다시 이직해야 했다. 김씨는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맞춰지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급여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에서 남씨와 김씨 사연은 특별할 게 전혀 없다. 공공금융기관·저축은행·카드사·보험사·증권사·캐피탈사·대부업체 등 어디를 가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뒤 비정규직들은 기간제 계약직, 시간제 계약직, 무기계약직, 간접고용, 특수고용직(개인사업자) 등으로 분화·확대돼 왔고, 이들이 임금과 처우 등에서 받는 차별은 당연한 게 됐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들 제2금융권 비정규직의 규모와 실태를 가늠해보고 대책을 논의하는 ‘사무금융권 비정규직 현황발표 및 대안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지난 7월부터 제2금융권 비정규직 285명, 노조 간부 87명을 설문조사(일부는 추가 면접조사)한 결과 등이 소개됐다. 업종·고용형태·직군별로 다양한 비정규직들의 애로사항과 더불어, 문제 해결을 둘러싼 비정규직들과 노조 활동가들 사이 인식 격차도 확인됐다.
■ ‘도급업체서 다른 도급업체로’ 비정규직 전전 설문에서 비정규직 응답자 23.2%는 ‘갑자기 사업장·고용주가 바뀌거나, 업무는 그대로인데 서류상 입·퇴사 또는 해촉·재위촉을 경험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외주화는 노동자에게는 임금·처우 하락을 뜻한다. 도급(하청)업체를 오가며 소속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콜센터 등에서 일은 그대로인데 소속만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원청이 도급업체를 바꿔도 업무 숙련도가 높은 이들은 고용이 승계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어져도 이직에는 문제가 없는 셈인데, 이 과정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손해를 봐야 했다. 근속연수가 줄어 퇴직금 산정 기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 한 사업장 노조 활동가는 “콜센터는 10년 넘게 (계약이) 가기도 하지만 1~2년마다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소속사가 바뀌는데 (근무기간이) 1년 안 된 상태면 퇴직금 못 받고 새로 입사해야 하고, 그마저 고용승계가 안 되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년 이상 근무 땐 직고용’ 규정을 피하기 위해 한 2년마다 다른 계열사로 소속을 옮겨가며 계속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악명’ 높은 금융그룹사 사례도 있었다.
■ 무기계약직, 임금·처우개선 기대 어려워 비정규직 설문 응답자의 66.7%는 ‘처우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73.7%는 ‘업무량과 비교해 적정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임금 혹은 수수료 인상률이 적정하다’는 문항에는 그보다 많은 81.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임금 수준보다도 향후 임금인상 기대와 관련한 불만이나 비관적 전망이 더 많은 셈이다.
손해보험사 콜센터 소속 한 무기계약직은 심층면접조사에서 “급여가 오르지 않으니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애를 낳을 생각도 못 하겠다”며 “주말 저녁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이 저출산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계약기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 통계청 조사에서는 정규직으로 분류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간쯤 처우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중규직’으로도 불리는 무기계약직들의 불만도 상당했다. ‘업무량과 비교해 급여 수준은 적정하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무기계약직들 비중은 88.5%로, 기간제 계약직(71%), 시간제 계약직(75%), 파견·용역·도급업체 소속 등 간접고용(62.7%)보다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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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사무금융우분투재단 공동 주관으로 열린 ‘사무금융권 비정규직 현황발표 및 대안 모색 토론회’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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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사무금융우분투재단 공동 주관으로 '사무금융권 비정규직 현황발표 및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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