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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 어찌하나 <하> 제도로 풀자
이해충돌 조정 제도적 장치 만들어야
설계 끝난뒤 ‘환경평가’하면 면죄부만 오스트리아는 1990년대 말 빈 국제공항에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소음에 시달리던 주민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자체는 지역발전 저해를 우려했고 주말농장 소유자들까지 들고 일어섰다. 공항 쪽은 끈질긴 사전논의를 거쳐 2001년 50개 이해당사자 집단이 참여하는 조정협약을 체결했다. 공모를 통해 채용된 3명의 조정전문가 주도로 참가단체로 꾸려진 조정포럼은 이후 환경·지역경제·지역사회 문제를 토론한 끝에 지난해 대부분의 쟁점에서 합의에 도달했다. 여기엔 새 활주로 건설을 허용하되 이용 승객 1인당 20센트를 환경기금으로 적립해 소음피해 보상과 지역발전에 쓴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환경갈등을 처음부터 이해관계자의 참여 아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일반화돼 있다. 폐쇄적인 개발계획 결정과 밀어붙이기식 추진 그리고 뒤늦게 전면대결로 치닫는 우리와는 다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국책사업을 둘러싼 첨예한 환경갈등은 민주화와 환경의식이 급속히 고양된 우리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김환석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이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발전의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그러나 이를 예방하고 완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없어 갈등이 극단적인 형태로 증폭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호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사팀은 최근 발간한 <환경분야 갈등 유형 및 해결방안 연구>에서 시민참여 활성화와 참여적 의사결정의 제도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팀은 협상·조정·중재 등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과 일반시민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합의회의, 시민배심원, 시나리오 워크숍, 공론조사 등 심의적 의사결정 방식의 도입을 제안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은 “음식쓰레기 처리시설 입지를 둘러싼 울산 북구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만이 갈등을 풀 수 있다”며 “특히 사업의 구상단계부터 시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개발의 면죄부’로 비난받으면서 환경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도 대화의 시점과 연관돼 있다. 현재 사업자는 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 의견을 반영해 최종평가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이미 사업 계획이 확정되고 설계가 마무리돼 있어 요식절차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정부는 최근 환경갈등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도적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올 상반기 중 갈등관리법을 제정해 갈등관리조정센터 설립 등에 착수할 계획이다. 또 환경부는 계획 수립 단계부터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평가’ 체계를 도입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갈등 관리가 성과를 거두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한 참여와 소통이 필요하다. 실적 위주로 조급하게 추진된다면 갈등은 덧나기 십상이다. 지속가능위원회가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해 한탄강댐 갈등 조정에 나섰다가, 5개월 동안의 노력으로 조정안을 마련하고도 댐건설 반대 쪽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그런 교훈이 될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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