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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6 18:57 수정 : 2005.02.06 18:57

지난해 10월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센병 인권 보고대회’에서 한빛복지협회 회원들이 ‘한센인을 위한 복지국가 건설하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서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편견사슬에 묶인 한센병 환자들

①정착촌에 갖힌 2세들
②거리의 재가 환자들
③다 말하지 못한 역사
④차별과 편견을 넘어

한센등록자 3%만 치료대상…발병율 감소
‘무늬만 부모’ 지원깎고 장애인혜택 못누려
국가 피해보상 필요…사회적 편견 없애야

“한달에 13만4천원 쥐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라니…. 병이야 다 나았지만 나이도 많은데다 병흔까지 남았는데, 누가 나한테 일자리를 주겠어….”

전라도 순창지역 정착촌에 사는 한센병 1세 김아무개(58)씨의 한달 생활비는 13만4천원이다. 전기세·수도세·전화요금을 내고 나면 한달 10만원으로 먹고, 입고, 자야 한다. 한평생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온 터에 벌어 놓은 것도 없고,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한센병 부모와 천륜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큰 짐을 지고 사는 자식들한테 생활비까지 달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치료에서 재활로=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대 중반에 이미 한국을 한센병 퇴치국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센병 환자 및 병력자와 2~3세들은 차별과 편견,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된 가난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센인에 대한 정부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한센인들은 우선, 치료 중심의 한센인 정책을 복지중심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현재 국립소록도병원과 전국에 흩어진 다섯군데 요양원에 대한 지원 중심으로 한센인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또 정착촌에 흩어져 있는 병력자들에 대해서는 한국한센복지협회 쪽에 사업을 위탁해 방문 치료 위주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2004년 1월 현재 한센등록자 1만6801명 가운데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3%인 518명에 불과하다. 새로 발견된 환자는 지난 2003년 41명이었다. 최규태 카톨릭대 한센병연구소장은 “우리 나라에서 한센병에 대한 치료는 이미 마무리된 상태”라며 “환자 치료에 예산을 대거 투입하기보다는 환자가 사회에 무사히 복귀하도록 재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비 보조, 진상 규명” 한 목소리=가장 시급한 것은 얼굴에 병흔이 남은 환자들의 성형 수술과, 사회의 편견으로 구직 기회를 못잡고 있는 한센인들에 대한 생활비 보조다.

정부에서는 한센병력자들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대상자로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한센병력자에 대한 특례 규정이 없어, 지자체 별로 1인당 생활보조금 지급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이 돈은 대부분 정착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배정돼, 한센인의 60%가 넘는 재가환자(9280명)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센인들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자식들과 왕래가 없지만 정부는 일반 수급대상자와 마찬가지로 자식이 있는 병력자들의 보조금도 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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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센병력자들이 손과 발, 얼굴 등에 말초신경 마비로 인한 기능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 규정을 까다롭게 두고 있어 장애인 혜택을 못받는 경우가 많다. 지체장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손발이 잘라지는 등 눈으로 보이는 장애 정도가 커야 한다. 한센병력자들은 손발은 제대로 붙어 있지만, 기능이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센인들은 또 과거 인권침해 등 국가가 저지르거나 방조한 한센인 차별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소록도 84인 학살사건, 비토리 학살 사건, 오마도 간척사업, 단종수술 등의 진상규명이 시급하다.

한센병 특별법 제정 시급=한센인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현재 ‘한센병 인권과 복지를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별법을 통해 과거 인권침해의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를 만든 뒤, 명예회복과 보상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한센인들의 현실에 근거한 복지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2002년 ‘국립 소록도 병원 입소자 등의 피해에 대한 진상파악과 그 배상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사회차별을 겪었던 한센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첫 움직임을 시작했다. 당시 법안에는 △과거 한센인에 대한 인권 침해 진상파악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해명·추모사업·명예회복·보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이어 받아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실에서는 과거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포함한 부당한 국가권력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고령화된 한센인에 대한 생활보호 등을 뼈대로 한 ‘한센인 특별법’(가칭)을 준비하고 있다. 법안은 다음달 15일 ‘한센 병력자의 인권·복지실태와 한센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4월께 완성될 예정이다.

임두성 한빛복지협회장은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을 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과 더불어 한센병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없애야 한다”며 “국민교육 및 홍보를 강화해 전염력이 거의 없는 한센병의 실체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김춘진 열린우리 의원 인터뷰

“5월께 특별지원법 발의 예정”

편견의 사슬에 묶여 고통스런 삶을 살아온 한센인들을 위한 ‘특별지원법’을 준비하고 있는 김춘진(사진) 열린우리당 의원은 “그동안 이뤄진 치료 중심의 소극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병력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활 중심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며 “4월께 법안을 완성해 5월께 국회에 정식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센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때 의료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한센인들을 자주 접했다. 그때는 봉사에 바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계기로 한센인들의 고통을 일부나마 이해하게 됐고, 묵은 한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 있는 대안은?

=일본과 같이 특별법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게 좋다는 의견이다. 법안에는 △비토리섬 학살 사건 △소록도 84인 학살 사건 △오마도 간척 사업 등 국가에 의한 부당한 인권 침해에 대한 보상과 고령화된 한센인에 대한 정부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주는 내용이 포함된다. 두 가지 내용을 하나의 법안에 묶을지 둘로 나눌지 고민 중이다. 한센병 환자는 이제 거의 없다. 치료 중심의 정책에서 재활 중심의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법안 진척 정도는?

=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한센복지협회 등 관련 단체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검토중이다. 일본군 위안부나 탈북자 지원법 등 참고할 만한 법들이 많이 있다. 4월께 법안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국회의원들을 모아 5월께 발의할 예정이다. 지역구에 정착촌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아 법안 처리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법안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법이 보상적 성격을 갖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보상적 성격을 갖는다면, 과거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본다. 또 과거 한센병을 문둥병이라고 하며 이들과 이들의 자녀를 천대하고 이들을 차별하던 일반 국민의 인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일본은 어떻게 했나

2001년 ‘나예방법’ 위헌 판결
1인당 800만∼1400만엔 보상

우리 나라의 한센병 격리정책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다. 일제는 1907년 한센병 환자에 대해 ‘나예방에 관한 건’을 제정하고, 환자들을 요양소에 몰아 넣는 강제 격리정책을 취했다. 이 정책은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씨를 말린다는 뜻으로 야만적이고 비인도주의적 정책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잇따랐다.

1958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나학회에서는 일본의 강제수용이 부당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시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은 제정된 지 90년이 지난 1996년에야 폐지됐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제격리 정책이 폐지된 것은 이보다 33년 앞선 1963년이다.

그렇지만 한센인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일본이 우리보다 빨랐다. 1998년 한센인 요양소의 입소자 13명이 ‘나예방법’이 위헌임을 주장하며, 일본 구마모토지방재판소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01년 5월11일 환자들의 손을 들어 줬고, 입소기간에 따라 1인당 800만~1400만엔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항소가 예상되자,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와 전국 한센병 관련단체, 시민인권단체 등은 일본 후생노동성청사와 수상관저에 연좌하고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정부의 항소포기 촉구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12일만에 무릎을 꿇었다. 같은해 5월2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한센병문제의 빠르고 전면해결을 향한 내각총리대신담화’를 발표해 항소를 포기했고, 같은해 6월22일 ‘한센병 요양소입소자 등에 대한 보상금의 지급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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