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강제해직 편집기자 출신
정남기(62) 이사장은 편집기자로 잔뼈가 굵은 내근기자 출신이다. 〈연합뉴스〉 〈전자신문〉 등에서 30여년을 보냈다. 그는 1980년 언론민주화 투쟁 당시 기자협회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분회장이라는 이유로 강제해직당했다. 사표를 내면서 “장렬하게 끝을 맺고 싶다”며 해직처분 공고에 자신의 이름을 맨 위에 써달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는 화젯거리였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는 합동통신 편집부에서 몇년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80년 함께 해직된 정 이사장과 정 장관은 88년 각각 연합뉴스와 한겨레신문에서 제2의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때문에 그가 이사장으로 선임됐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장관과 친분이 있어 발탁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복직한 뒤엔 ‘전공’인 편집과 무관한 조사부·교정부·자료센터 등을 떠돌아다녔다. 98년 7월부터 반년 가까이 논설위원실장 직무대리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민족뉴스 취재본부장·고문을 끝으로 2001년 3월 기자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연합뉴스 동북아시아정보문화센터 소장과 한국편집미디어협회 부회장 등으로 있으면서 언론계 ‘좌장’ 구실을 했다.
“돈만 쓰는 곳으로 인식해 사업보단 연구에 힘 쏟을 것”
지난해 12월23일 한국언론재단 이사회에선 서동구 전 〈한국방송〉 사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박기정 이사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문화관광부의 애초 구상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문화부는 ‘노게임’을 선언했고, 잠깐 저항하긴 했지만 박 이사장이 백기를 들어 사태는 일단락됐다.
지난달 18일 문화부의 임명 승인을 얻은 정남기 이사장은 문화부가 얘기했던 ‘뉴 페이스’인 셈이다. 정 이사장은 오랫동안 〈연합뉴스〉 등에서 편집기자로 이름을 날렸을 뿐, 대외적으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통신사에서) 내근만 하고 이름없던 사람이 언론재단 수장을 맡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례적인 일”이라면서도, “특정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언론재단을 위기에서 구해내라는 (정부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재단 하면 세미나를 열거나 기자들 국내외 연수나 보내주며 돈만 쓰는 곳이라는 오해를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사업분야보다는 연구분야를 활성화해 재단의 정체성을 새로 확립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 양성·재교육기관’ 설립 검토
재단 위상정립 위해 법제화 추진
-부서 업무보고를 받았을 텐데,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까?
=‘저널리즘 스쿨’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엔 외국처럼 기자를 양성하거나 재교육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습니다. 저널리즘 스쿨의 운영 주체나 학제, 프로그램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학계·언론계·정부 등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방향이 옳은데 재원 마련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연구팀에 설립안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안에는 구체안이 나올 것 같습니다.
-신문발전위원회(신발위)가 출범하면 언론재단의 위상이 낮아질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재단과 신발위의 업무영역이 겹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팎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절망적이진 않습니다. 문화부가 재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두 기관의 업무영역을 적절히 교통정리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이사장으로선 재단의 위상에 흠이 가지 않는 것을 1차 목표로 뛸 것입니다. 그러면서 현재 지역신문발전위원회·신문발전위원회·방송위원회 등 매체별로 나눠져 있는 입법체계를 통합하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
-방송위원회가 언론재단에 지원하던 방송발전기금 34억원을 끊겠다고 했는데….
=방송광고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방송만을 위해 쓴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잘나가는 방송에 기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타 매체와 방송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이 문제는 언론산업 진흥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방송위와 언론재단의 갈등으로 비쳐선 안 되고 언론 종사자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재단이 방송 관련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공을 생각하면 방송위가 기금을 끊지 않을 거라 기대하지만 기금이 끊기면 타격이 큰 만큼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재단 수입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부광고 대행 수주 업무가 복수경쟁 체제로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비책이 있습니까?
=정부광고를 언론재단에만 맡기니까 괜찮은 광고가 안 나온다는 불만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 광고대행사나 언론기관 등이 광고수주 경쟁에 매달리다 보면 정부광고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습니다. 복수경쟁 체제를 일단 실시하면 다시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언론재단은 고급 광고를 생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언론재단이 지금처럼 위기를 겪는 데는 내부문제 탓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여러 언론단체가 합쳐지면서) 파벌이 고착화돼 있습니다. 이런 고질적인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능력있는 인재를 전면 배치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단이 40여년(통합 이전까지 포함)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데 연구기능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재단의 정체성을 분명히하기 위해서는 연구기능이 충실해야 하는데, 그동안 언론인 연수나 저술 지원 등 사업분야에만 치중해 왔습니다. 재단 내부의 핵심 연구원을 확충하고 재단을 거쳐 간 박사급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연구기능을 강화해 갈 것입니다.
-언론인 연수·저술 사업 등이 ‘나눠먹기’로 전락했고 사후에 내는 결과물도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언론재단 하면 기자들 휴식 위해 골프나 치게 하고 세미나 열면서 돈만 쓰는 곳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연수 간 기자들도 적당히 보고서나 제출하자는 생각을 하죠. 이런 관행을 깨기 위해 새로운 기준으로 밀도있게 심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자들한테 연구 결과물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할 생각입니다. 특정 언론사에 지원이 편중되지 않도록 하다 보니까 ‘나눠먹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 부분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언론재단이 언론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언론개혁은 민감한 문제라 뭐라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언론개혁의) 방향에 맞게 언론인을 지원하거나 정치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언론개혁 법안 마련을 추진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에 선임된 상임이사 세 분이 언론계 경력도 풍부하고 개혁의지가 강한 분들이라 상임이사들과 작업을 하다 보면 좋은 안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3년 임기 동안 꼭 이뤄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재단의 위상 정립을 위해서 존립 근거를 명확하게 하는 법제화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또 가능하다면 지난해 발의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언론진흥법안을 손질한 뒤 입법을 이뤄내고 싶습니다. 절대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언론재단의 위상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만약 재단의 발전적 몸부림이 좌절되면 언제든지 사표를 던지고 나가겠다는 결의를 갖고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글 김영인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yiye@hani.co.kr
● 인터뷰 뒤안길
일 안풀릴땐 술기운 빌려 ‘엉엉’ 울기도
“젊었을 때 술집에 가면 주인이 ‘합동 울보 왔어?’라며 놀렸어요.”
정남기 언론재단 이사장과 인터뷰는 이사장실에서 시작해 술집에서 끝났다. 정 이사장은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엉엉 운다”는 ‘비밀’을 털어놨다. “하지만 어떨 때는 (사람에게) 너무 매몰찬 것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합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감추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이사장감으론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곧 “재단의 앞길을 고려할 때 지금은 나와 같은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치고나왔다.
그가 갖고 있는 자부심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 축은 80년 해직기자인 점 외에 아무리 복잡해도 한두 줄로 정리해 내는 정통 편집기자 출신인 점이고, 또 다른 축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비서를 지낸 정백현씨를 할아버지로 둔 점이다.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지키며 옳고 그름에 관한 한 명확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동학농민운동 기념사업 운동을 해오기도 했다.
그는 선굵은 스타일의 일면을 재단 인사에서 보여줬다. 취임 1주일 만에 전체 직원(132명)의 30%선인 41명을 다른 부서로 전보발령 낸 것이다. 직원들은 “업무수행 능력을 파악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그의 원칙은 하나, ‘파벌을 깨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재단이 언론개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정부에 종속적인 재단의 위상을 달리할 방안’ 등을 물어보자, “재단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는 여야로부터 두루 신뢰를 얻어야 하고 조·중·동도 고려해야 한다”고 비켜갔다. 전략적으로 정치적인 스탠스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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