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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와우산 기슭에 자리잡은 부군당에서 옛 밤섬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새해 운수대통을 빌며 도당굿을 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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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되고 건강하며 전쟁없게 도와주소서” “도당신 보위아래 우리 자손들 태평하게 하시고~ 부자되고 거부되고 흐르고 넘치게 도와주시고~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책임지소서 …” 음력 정월 초이튿날인 10일 낮, 서울 한복판인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요란한 북소리며 장구소리가 귀를 때렸다. 가파른 아파트 단지 들머리의 왼쪽편에 자리잡은 밤섬 부군당 대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부군당 주변에 마련된 장작불 주변으로 100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서 도당굿에 참여하고 있었다. 도당굿은 ‘노구메’(굿에 올리는 밥)와 삶은 달걀을 상에 얹은 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유가’로 시작됐다. 굿판이 열리자마자 도당신의 뜻을 대변하는 무당 김춘강씨의 호통이 쏟아졌다. “어허~ 정성이 부족하다, 도당신님이 노하신다~” 무당 김씨가 20여분 동안의 씨름 끝에 ‘사슬 세우기’(삼지창에 돼지머리를 꽂은 뒤 제사상에 세워 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에 성공하자, 밤섬 주민들은 앞다퉈 1만원 지폐를 돼지 입에 물리며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렸다. 집안의 대소사부터 나라의 발전까지 다양한 소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해 어려운 경제 상황 탓인지 무당 김씨가 신에게 비는 소원에는 경제에 관한 것이 많았다. 또 불안정한 남-북, 북-미 관계로 인해 전쟁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경제가 어려우니 사업이 번창해서 작년에 진 빚 전부 갚고 남게 해 주소서~ 가정 모두가 건강하고 평안하도록 해 주소서~ 대한민국이 부강한 대국이 되게 하시고 더불어 전쟁 없고 화평한 한 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굿판의 열기가 요란한 연주와 함께 점차 뜨거워지는 동안, 찬방에서는 전과 산적이 참여한 여러 사람들에게 연신 날라졌다. 둘러선 밤섬 주민들과 구경꾼들은 추위를 잊고 꺼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들며 계속 굿판에 참여했다. 도당굿 악사들의 피리 소리와 장구 소리가 높아지면서 드디어 열두 굿의 최정점인 ‘창부거리’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추운 날씨도 잊은 듯 신도 신지 않은 채 겅중겅중 마당으로 뛰어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무당과 신과 함께 한해의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무당 김씨는 모두의 소원을 대신 빌어 주었다. “도당신이여, 만복을 내려주시고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운을,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장사운을,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공부운을 내려주소서~” 올해 당주를 맡은 최창선(70)씨는 한 걸음쯤 뒤로 물러서 스스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축언을 올리랴, 정성을 더 보태라고 돌아가며 주민들을 채근하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런 주민들의 정성이 신에게 전해졌는지 지난해 12월17일 ‘밤섬 부군당굿’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등록됐다. “60여가구 중에서 아직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10여가구뿐이야. 그렇지만 옛 밤섬 주민들은 도당굿이 열리는 날이면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충청도에서 거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지.” 밤섬 주민들은 1968년 여의도 개발에 따라 돌과 흙 채취를 위해 밤섬이 폭파되면서 하루아침에 실향민이 됐다. 그러나 60여가구 450여명의 원주민들은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마포구 창전동에 집단 이주를 하면서도 ‘당집’을 소중히 모셔왔다. 조상 대대로 수백년 동안 ‘동네의 안위와 국가, 사회의 번성’을 기원해 ‘부군당굿’은 올해도 어김없이 설 다음날 열린 것이다. “바라는 거? 올해가 닭의 해라며? 달걀처럼 예쁜 손주도 보고, 닭고기처럼 풍성한 한해를 바라지. 가정이나 나라나 다 한가지로 그걸 원하는 것 아닌가?” 굿에 참여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새벽에 올라왔다는 밤섬 토박이 김학범(56)씨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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