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07 16:48 수정 : 2006.03.08 14:23

“여성단체를 돕는 일은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이라는 배우 권해효씨. 한국여성단체연합이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평등 디딤돌’에 뽑힌 그를 지난 6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 올해 ‘성평등 디딤돌’ 선정된 배우 권해효씨

지난 5일 늦은 밤, 정확히 말하면 6일 새벽, 집에 들어간 배우 권해효씨(41)는 아내에게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성평등 디딤돌로 선정됐다고 하니까 ‘잘 했어’ 하더군요. 처의 인생에서 내가 걸림돌일지도 모르는데…. 부끄러웠죠.”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올해의 ‘성평등 디딤돌’ 가운데 한 명으로 권해효씨를 선정했다. 그는 시민단체의 ‘마당발’로 유명하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행사,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호주제 폐지 행사, 평등가족 페스티벌 행사장에도 권씨는 늘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최근엔 여성계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든 그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지난 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22회 한국여성대회에서도 어김없이 무대에 올랐다. 단 몇십분의 행사 진행을 하려고 그는 연극 두편과 드라마 한편에 동시에 출연하는 바쁜 일정에서 시간을 뺐다.

“남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여성은 숫적으로 절반이지만 성 소수자이고, 차별의 대상이고, 손해보는 집단이니까요.”

배우에게 여러 가면이 있다지만 그는 연기를 떠나서는 ‘액면 그대로형’ 인간이 된다. 삶과 생각이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로 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여성단체의 한 관계자는 그를 “성평등 의식을 공부하고, 공부한 바를 그대로 생활 속에 실천하는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보수화하는 대한민국 40대 남성”으로 “술자리에서만 멋진 진보, 생활에서는 보수가 되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 한다.

“남성들은 흔히 ‘먹고 살려니 어쩔수 없다’고 하죠. 그 말 속에 너무 많은 양해가 숨어 있습니다. 여성이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으면 바보 취급 당한다는 것도 일종의 남성 사회 안에 있는 허구예요. 여성들도 ‘우리 남편 고생했어’라며 용인하는 말을 그만둬야 합니다.”

육아로 무대 떠난 아내에 미안하고… 성차별 겪을 딸 보면 안타깝고
삶·생각 일치하는 사람 되고파

말만 들으면 마치 여성단체 활동가 같다. 여연 홍보대사가 된 뒤엔 ‘자기 검열’까지 생겨 “친구들이 부추겨도 의식적으로 여성들이 접대하러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벌이와 가사노동으로 ‘분업’을 했다지만 모든 일을 아내에게 떠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집안 일과 육아에 매여 연극무대를 잠시 떠난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시민단체를 도와 무대에 오르고, 대학생들 앞에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강의를 해온 일도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일치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자연인 권해효로 서는 것은 낯설고 부끄럽습니다. 운동에 대한 부채감도 있었던 것 같고…. 일단 정신 건강에 좋아요. 실천하고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딸을 가진 아버지가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한 연구 결과처럼 그 또한 딸을 두고 난 뒤 성차별 문제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호주제 폐지를 도우리라 결정한 것도 딸을 두면서부터다. 딸의 출생신고를 직접 하러 갔다가 아내 본적이 자신의 본적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는 충격을 받았다.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일하면서 입에 달고 살았던 일화다. 그는 여전히 딸을 볼 때마다 “속상하다”고 한다.

“5살짜리인데도 자기 주장이 확실해요. 그런 모습을 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데, 커가면서 꺾여나갈 걸 생각만 해도 속상합니다.”

인터뷰 내내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다. 그는 “돈을 벌어온다는 명목으로 가정에서 아내와 평등권을 맞바꿨다”며 머리를 떨궜다. “어머니 급식당번제처럼,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면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이 모두 엄마 몫으로 남는다”며 애닯아하기도 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여성 차별에 대해 끝도 없이 말할 것만 같은 그에게, 최근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 자체가 2006년 대한민국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매일 밤 대한민국 어느 회사 회식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겠지요.”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