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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07 14:44 수정 : 2008.03.07 14:56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 7일 오전 경기 광주 광주장례식장에서 강주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이 조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 7일 문 할머니가 생전에 거주하던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과 가족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지난 5일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 문필기(82) 할머니의 영결식이 7일 오전 경기도 광주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문 할머니의 영결식에는 할머니와 함께 나눔의 집에서 지내온 김순옥(85).이옥선(82) 할머니와 여동생 문말이(78)씨와 일본인들을 비롯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필기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 7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문 할머니 동생 문말이(78)씨가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울고 있다. 광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순옥.이옥선 할머니는 영구차에 실리는 문 할머니의 유해에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 "먼저 가서 자리 잡아놔요"라며 눈물을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어 문 할머니의 유해와 영정은 생전 할머니가 머물렀던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들러 '노제'를 한 뒤 수원화장장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유해는 화장 후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노환으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할머니들은 나눔의 집으로 돌아온 문 할머니의 영정을 부여잡고 안타까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박옥선(83) 할머니는 "우리 다 일본 사죄받고 죽자더니만..18살 때부터 평생을 밤마다 뒤척이고 쫓기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편히 쉬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문 할머니는 1943년 18살 되던 해에 일본군 앞잡이에게 속아 만주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2년여간 위안부 생활을 했다.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상처로 인해 평생을 아파하며 살았던 문 할머니는 2003년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며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병상에서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증언을 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데 앞장서왔다.

지난달 지돌이 할머니에 이어 문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나눔의 집에는 지난해 2월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던 김군자(82) 할머니를 포함해 7명만이 남아 생활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문필기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 7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81)할머니가 문 할머니 관을 실은 영구차의 문을 닫아주고 있다. 광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심언철 기자 press108@yna.co.kr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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