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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4 18:45 수정 : 2009.01.15 17:07

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우리 모녀의 목욕탕 수다 일부.

“우리 국어책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는 글이 있는데 그 글 쓴 사람도 어리석게 안 살았으니까 교과서에도 실리고 했을 것 아냐?”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를 설명한 글이니?”

“아니,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 나오는 기행수필인데?”

“그럼, 혹시 글쓴이가 신영복 선생 아냐?”

“신영복? 잘 모르겠는데….”


“만약에 그 글의 작가가 신영복 선생이라면 그분은 정말로 세상을 어리석게 산 게 맞아. 통일운동하다 사형선고까지 받고 20년을 감옥살이했던 분이거든.”

아르키메데스도 아닌 것이 딸의 교과서를 찾아 벗은 몸으로 목욕탕을 뛰쳐나왔다. 유레카! 신영복 선생이 맞았다. 내 딸이 배우는 교과서가 이렇게 달라져 있구나!

그날부터 이제 여고생이 되는 딸의 지난 중학교 교과서를 붙잡고 ‘열공’ 중이다. 교과서로나마 ‘비판’과 ‘참여’를 배우며 자란 십대들의 눈에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를 보내며 세상을 보는 딸의 눈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넓어진 현실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하나.

딸이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이면의 진실을 알아갈수록 어른 노릇을 해 보려고 나름 고군분투했다. 이름하여 ‘일상으로부터의 혁명’. 학교폭력을 신고하라는 교문 위에 걸린 펼침막에 자극돼, 어느 날 아침 딸의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여학생들의 엉덩이를 ‘심하게’ 때리는 남선생에 항의하러. 나의 분노 어린 전화 뒤, 고맙게도 문제의 선생은 이제 엉덩이는 때리지 않는단다. 다만 다른 부위를 때릴 뿐.

경찰서도 방문했다. ‘스쿨존’ 설치를 요망한다고. 딸을 차로 등교시킬 때마다 교문 옆에 주차돼 있는 차들이 딸의 안전을 위협했다. 위태롭게 도로에 차를 세우면 애는 차가 오는지 어쩐지도 안 보고 (지각이면 또 맞는다!) 냅다 달리기만 해서 어미의 간 신축성을 몇 번이나 실험대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에 조금씩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구절에 딸은 빨간 펜으로 줄을 빡빡 그어 놓았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엄마 때문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던 딸이 이제는 엄마의 방식을 지지하고 나선다. ‘쌈닭’ 엄마가 창피했던 딸은 자신도 그 상황이었다면 엄마처럼 했을 거라고 ‘투사’ 엄마의 손을 번쩍 들어 준다.

올 한 해도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그 모든 부당한 권력에 항의하고 저항하리라. 저 들의 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준 변화만큼은 나도 세상에 돌려 주어야 할 터이므로.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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