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신문들을 집어와 화장하는 틈틈이 읽는다. 나는 신문중독이다. 아침마다 신문 2개를 훑지 않으면 온전한 시작이 아닌 것 같은 증세가 평생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화장이다. 단 한번에 기초화장부터 립스틱까지 모든 것을 일괄 코팅하는 방법이 있다면 분명 화장의 신기원을 열 터인데. 미숫가루와 우유 범벅을 만들어 식탁에 놓고 냉장고 속 식은 밥그릇이 2개가 되는 지 확인하면 출근 준비 완료다. 입을 옷을 아침에 고르려다간 초를 다투게 되니 외출복은 전날 밤에 미리 골라둔다. 아침 시간은 5분이 아쉽다.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 일과 중 60%는 끝난다.
위대한 ‘관성의 법칙’이 관리해 주는 일상을 지금까지 흐트러짐 없이 이어온 내 자신이 기특하다.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때로 즐기고 때로 뻐기며 살아온 22년. 나는 나를 마구 칭찬해주고 싶다. 장하다, 5학년! 그러나 제 아무리 ‘다이나믹 코리아’라지만 20대와 30대의 생활방식을 50대에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게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걸까? 30대에 못지 않는 체력을 50대에 가졌다손 치더라도 때론 일상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50대 삶의 속도는 30대와 40대와 달라야 할 것 같다. 결혼과 아기, 그리고 가정을 남부럽지 않게 유지·관리하려고 숨가쁘게 달려온 날들, 나를 짓눌러온 모범답안의 강박을 이제는 좀 벗어 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그외 온갖 역할이 주는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약간 헐겁게 자신을 해방시켜도 민족과 국가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 5학년들에겐 뭔가 새로운 생활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 놈의 결혼생활에는 그 좋다는 안식년도 도입되지 않는단 말인가? 일단 결혼하면 종신임기제일 뿐 아니라 비상탈출구라곤 가출이나 이혼 아니면 배우자 유고라는 극한 상황일 뿐이니. 모두들 ‘열린’ 이란 단어를 좋아하지만 결혼생활은 굳게 닫혀 있다. 가끔 나는 꿈꾼다. 결혼에 안식년이라는 게 있어서 합법적인 일탈이 허용된다면 가출이나 이혼 같은 결혼 탈출 시도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단기 가출이 안식년 컨셉의 연장 선상에서 수용된다면 결혼은 훨씬 더 견딜만할 것 같다.
완경은 여성 모두가 맞이 하는 전환기. 그 전환기에 한 해 쯤 스스로에게 안식년으로 제공해 보는 건 어떨까? 조금 느슨하게 조금 게으르게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 몸이 떠나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라도 말이다. 여전히 남는 의문. 정녕 결혼이란 다시 돌아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시스템일까? 박어진/ 직장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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