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29 12:09 수정 : 2015.01.29 14:21

황선순 할머니. 2013년 4월 5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자택에서.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기자 블로그]
이정아 기자가 만난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

이정아 <한겨레> 사진부 기자가 지난 26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를 기리며 블로그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황활머니의 사망으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54명이다. 이정아 기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속적으로 취재해 오고 있다.

반가운 손님의 보따리에서는 이것저것 선물들이 계속 나온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래도 그보다 더 좋은 건 이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와 웃음꽃. 손영미 소장은 활짝 웃는 할머니 얼굴이 마치 꽃송이 같다며 손바닥으로 꽃받침을 만들어보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가 26일 오전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서 여든아홉해나 살아내시고 영면하셨다.

2013년 4월 5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자택에서 황 할머니를 뵈었다. 꼭 한 번.

소박한 담벼락이 인상적이던 댁으로 들어가며 손영미 정대협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은 친어머니 자랑하듯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 되면 이 담 아래 할머니가 심은 꽃들이 가득 핀다고, 그 연세에도 얼마나 부지런하고 정갈하신지 모른다고. 마치 눈 앞에 지천으로 널린 꽃덤불이 보이는 듯했다.

홀로 수저를 들어 식사하기 어려운 할머니에게 환갑을 넘긴 아들이 유동식을 떠먹여드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이 짠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지만 방안에서 사람들을 맞으시는 할머니는 거동도 쉽지 않았다. 홀로 식사하기 어려우신 탓에 아드님이 떠먹여주는 유동식을 받아드셔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가며 방방곡곡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는 정대협 활동가들은 꼼꼼하게 챙겨간 꾸러미에서 영양제와 파스 등 알뜰살뜰한 선물을 꺼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나는 혹여 낯선 객이 그 귀한 자리의 정다움을 해칠까 조심스러웠다. 좁은 방안에는 몸을 숨길 곳도 없었다. 그렇게 겨우 수십여 장의 사진이 남았다. 그리고 그 중 몇 장.

나는 차마 직접 듣지 못한 할머니의 삶은 정대협의 부고로 대신한다.

“날 따뜻해진다고 예전처럼 김매러 나가시면 안돼요”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은 당부를 거듭한다. 어르신들 건강은 하루가 다르기 때문. 사랑의 잔소리를 들으시던 할머니는 머리를 긁적이시고.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울어진 천장 아래 연한 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찍으신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황선순 할머니께서 오늘(1월 26일) 오전8시에 89세의 연세로 운명하셨습니다.

할머니는 1926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셨으며 17세 무렵에 고모집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가던 중 부산에 있는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남자들의 말에 속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부산, 일본을 거쳐 남태평양 나우르섬의 위안소에 동원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년간의 일본군'위안부'로 생활하셨습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지독한 가난과 대상포진과 뇌경색, 당뇨 등 여러 질병으로 힘든 삶을 사셨던 할머니는 그럼에도 늘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황선순 할머니께서 운명하심으로써 일본군‘위안부’생존자는 54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짐을 다 챙겨 나섰던 양노자 정대협 인권팀장은 기어이 다시 들어와 할머니 곁에 쪼그려 앉는다. 눈물바람 아니어도 작별은 참 어렵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맨마지막 컷은 사람들을 배웅하는 할머니의 미소였다. 몇번이나 인사를 하고도 발걸음을 떼지 못해 들락거리는 손님들에게 할머니는 편안히 돌아가라는 듯 따뜻한 얼굴로 배웅해주셨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모두 빠져 나간 방 안에 빙그레 웃으며 앉아 계신 황선순 할머니. 그 미소 마음에 품고 이제 할머니 가시는 길을 배웅한다.

황선순 할머니 이제 영원한 쉼 가운데 편히 잠드소서.

이정아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