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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19:09 수정 : 2007.06.08 16:30

깨진 주전자를 이용한 화분. 깨져서 유용하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단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단다. 나는 예쁜이에게 물어본다. “아가씨 집이 어디죠? 아니, 잘못 말했습니다. 내 꽃들의 예쁜 집은 어디서 구하죠?”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가 구겨져 사는 집은 불모의 행성이다. 그나마 사람만 겨우 살게 해놓았다. 이 척박한 돌덩이 위에 꽃과 풀을 정착시키자면 그들만의 집을 구해 주어야 한다. 물론 화원에서 줄기와 뿌리만 달린 화초를 덩그러니 건네주는 법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얄팍한 비닐 포대나 플라스틱 화분이라는 임시 거주지에 담아 준다. 그 꼴대로 집 한쪽에 세워 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 천막 치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비틀거리거나 뿌리를 내밀며 집 좀 넓혀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꽃집 아가씨는 정답을 말한다. “예쁜 화분도 사가세요.” 그런데 그 답이 내 마음을 썩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화원에서 파는 화분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은 좋지만 정말 투박해서 어서 빨리 줄기가 늘어져 화분 전체를 가려 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염가족’. 다른 하나는 제법 세련되었지만 화초 수십 배나 되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 ‘고가족’. 몇 종류의 토분을 제외하곤 지갑과 눈을 함께 만족시킬 녀석들을 찾지 못했다.

없으면 만들자. 나는 근처 도자기 공방에 가서 화분을 직접 빚기로 했다. 주물럭거리며 기괴한 그릇을 만들어 어설프게 그림도 그렸다. 그런데 제일 성공작은 이 나간 우동 그릇에 살짝 색을 칠하고 물 빠지는 구멍을 뽕뽕 뚫은 녀석. 이 정도면 굳이 공방까지 안 와도 되겠는 걸. 식물의 집이란 게 흙을 담고 물을 내보내고 썩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때부터 나는 동네 재활용 수거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뚜껑 없는 장난감 자동차를 한련의 공동주택으로 만들고, 와인 상자를 허브 농원으로 변신시키고, 한 짝만 남은 신발을 선인장의 침실로 삼고, 작은 깡통들을 새싹들의 자취방으로 분양했다. 가끔은 불평하며 피식피식 시들어버리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개는 행복해하며 잘만 자라주니 대견하다.

이명석 /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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