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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6 21:16 수정 : 2007.06.08 15:54

칠사당 대청에서 신주를 빚어 항아리에 담았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트래블
일본 술축제가 부럽지 않은 강릉 단오신주빚기 행사의 감동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술의 행사를 꼽으라면, 단오 신주빚기를 꼽겠다. 신주빚기는 강릉 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열흘 뒤에 치러지는 대관령 산신제에 쓸 신주를 마련하고자 해마다 음력 4월5일에 빚어진다. 지난해 그 행사를 보고, 올해 또 보았다. 신주빚기 행사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있다니 …. 비록 각색된 게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만이 이런 행사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신주미를 챙겨 칠사당으로


칠사당에서 부정굿을 하고 있는 빈순애씨.
사실 나라 안에서 술 축제가 제법 벌어지고 있다. 경주술떡축제가 10년이 넘었고, 고양 막걸리축제, 인사동 막걸리축제, 포천 막걸리축제, 그리고 간헐적으로 술 축제가 벌어진다. 하지만 술 축제에 가면 술 대리점들의 경연장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술을 팔고 술을 마시는 것만 보인다. 그러다가 일본 사이조 술 축제를 보고서는 많이 부러웠다. 신사(神社)로부터 이어진 의례 행렬, 개방된 양조장, 자부심에 넘친 장인들, 그리고 전국 술의 현황도 보였다. 왜 우리에겐 그와 견줄 만한 행사가 없는가? 아쉬워하던 참에 단오신주빚기 행사를 보았다. 박수를 쳐줄 만큼이나 훌륭했고, 일본 술축제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주민들이 낸 신주미를 칠사당 대청에 모아두었다.
단오 신주빚기는 길놀이로부터 시작한다. 정월 동제(동네굿)에서 볼 수 있는 지신밟기와 동일하다. 단오제 보존회 깃발과 신주빚기 깃발이 앞장서고, 제관과 무당과 악사와 관노가면극 연행패들이 뒤따른다. 강릉 교동 강릉문화원에서 출발하여 중간 경유지인 강릉시청에 행렬이 도착하면, 시장이 나와 술의 재료인 신주미(神酒米)와 누룩과 솔잎을 봉정한다. 주민들에게 쌀을 내리는 게 아니라, 신에게 쌀을 올리는 것이기에 시장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부정이 탈까 봐서다. 무당들이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제관들이 신주미를 챙겨서 길 떠난다. 목적지는 조선시대 때 관아인 칠사당(七事堂)이다.

칠사당으로 가는 신주빚기 행렬의 수레 위에 주민들이 신주미를 올려놓는다. 신주미 한 자루에 쌀 4kg이 들어가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기원문도 들어간다. 요즘은 관의 지원이 커졌지만, 전통적으로 강릉 단오제는 주민들의 힘으로 치러져 왔다. 신주미 봉헌은 자발적인 주민 참여의 한 형태다.

강릉문화원에서 칠사당까지 거리는 3km 남짓 된다. 칠사당에서는 신주빚기 의식이 치러진다. 마당에 놓인 화덕에 가마솥을 얹고 물을 붓고 솔잎을 넣어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삼발이를 솥 위에 걸치고 그 위에 술항아리를 뒤집어놓아 소독한다. 항아리 소독은 술빚기의 기본이다. 이때 무당들은 화덕 주변에서 한바탕 춤을 춘다.



항아리를 소독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제관들.
소독한 항아리를 칠사당 대청으로 옮기면, 본격적인 신주빚기에 들어간다. 포토라인이 둘러쳐지고, 카메라맨들의 취재경쟁이 치열해진다. 신주빚기의 하이라이트라 팔 하나 끼워넣기 어려울 만큼 두터운 사람 장벽이 쳐진다. 무녀 빈순애씨가 악사들의 장단 속에 부정굿을 펼친다. 무녀는 소지(燒紙)를 올리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솔잎 묻혀 사방에 뿌리기도 한다. 이때 제관들은 새처럼 입에 종이 한 장씩을 물고 있다. ‘하미’라고 부르는 것인데, 부정한 것이 입에서 나오지 말 일이며, 입으로 들어가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렇듯 신주빚기 의식은 온통 부정을 물리치는 과정이다.

단오신주 마시고, 복도 마시고 …

부정굿이 끝나면 멥쌀 고두밥 두 말에 둥근 누룩 20장을 빻아넣어 신주를 빚는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술밥을 술항아리에 다 넣고 나면, 항아리를 한지로 덮고 새끼줄로 금줄을 친다. 술항아리는 칠사당 깊숙한 곳에 들어가 이제 익어가는 일만 남았다. 술은 음력 4월15일 산신제 때 쓰인다. 산신이 흠향하기 전까지 누구도 술맛을 봐서는 안 된다. 제주로 올려진 뒤에 맛볼 수 있는데 설령 맛이 시어졌더라도 맛없다고 투덜대기 어렵다.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이 흠향한 술을 한번 맛봄으로써, 신이 내린 복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복(飮福)이라 하지 않는가.

단오가 다가온다. 음력 5월5일이니, 올해는 양력으로 6월19일이다. 단오날에는 주민들이 낸 신주미로 양조장에서 빚은 단오신주가 나온다. 강릉 단오신주 꼭 한번 맛보고, 복도 마시기를 바란다.

허시명 / 여행작가·술품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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