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6.13 16:20 수정 : 2007.06.13 22:35

나의 도시 이야기/소설가 김애란의 베트남 나짱

[매거진 Esc] 나의 도시 이야기 / 소설가 김애란의 베트남 나짱

바람은 불지 않았다. 햇빛은 베트남인들이 즐겨 먹는 바게트처럼 바삭거렸다. 배에는 20명 안팎의 다양한 인종이 타고 있었다. ‘나짱투어’라 불리는 일일 관광 상품을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친구와 나는 ‘스노클링’이라는 말에 혹해 숙소 지배인에게 덥석 돈을 쥐어주었다. 정확히 어떤 성격의 상품인지는 몰랐지만. ‘시원한, 근사한, 맛있는, 즐거운’ 등의 꾸밈말이 적혀 있던 터라 선뜻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배는 민간인이 운영하는 듯했고, 좀 지저분해 보였다. 배 위에선 베트남 소년 둘이 잡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워댔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물빛은 곱고 하늘은 푸른데다, 이것은 분명 멋진 여행이 될 테니까! 웃통 벗은 백인 청년이 의자에 팔을 걸친 모습이 보였다. 햇빛 아래서 금빛 겨드랑이 털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화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할 즈음, 배는 속세 너머, 아득한 한 점으로 사라져갔다. 이국의 바다 위, 생면부지의 여러 인종이 섞인 배 안에서, 곧 진짜 속세가 펼쳐지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안내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중국배우 ‘오맹달’을 닮은, 쌍꺼풀을 가진 사내였다. 베트남식 영어는 발음이 어색했다. 하지만 재빠르고 유려하기도 해서 대본을 줄줄 외는 듯했다. 사람들이 그의 농담에 웃었다. 친구와 나는 영어가 짧은 탓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주춤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는 햇볕 가리개가 없었다. 우리는 소극적인 동양 여자의 얼굴을 하고, 줄곧 찡그린 채 앉아 있어야 했다. 기대했던 스노클링은 물안경을 쓰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에 불과했다. 우리는 수영복을 가져가지 않아 뱃머리서 구경만 했다. 훌훌 겉옷을 벗어재낀 사람들이 시원하게 다이빙했다. 안내원은 밤무대 사회자처럼 흥을 돋우며 풍악을 울렸다. 교정기를 한 캐나다 청년이 ‘오버’하며 뛰어 다녔다. 배 안에는 싱가포르에서 온 졸부 가족도 있었다. 그 집의 할아버지의 인상은 ‘드래곤볼’의 거북도사와 비슷했다. 처마엔 가로로 눕혀진 고물 스피커 두 대가 철사로 묶여 있었다. 안내원은 사람들이 스노클링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댔다.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바다 위로 마이클 잭슨과 애미넘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소리였다.

기분 나쁜 젖꼭지를 가진 미국 청년 하나가(나는 남자의 몸 중 젖꼭지가 가장 좋고, 웬만한 젖꼭지는 다 섹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남자의 젖꼭지는 왠지 재수가 없었다) 뱃머리서 춤을 췄다. ‘거북 도사’ 할아버지가 개다리춤을 추며 독일인 유부녀를 껴안았다. 안내원은 ‘아이 원어 위시 유어 메리크리스마스’를 부르고, 럭비공으로 된 젖가슴을 단 소년이 탬버린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벗고, 놀고, 소리 지르고, 춤추며 물속에서 독주를 마셨다. 친구와 나는 익숙한 연극에 초대된 얼굴로 울상진 채 9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나는 얕은 숨을 쉬며 수평선을 바라봤다. 바다는 마냥 평화로운 척 일렁이고 있었다. 휴양지 특유의 이완된 세계, 그림 같은 세계. 그러나 ‘관광’이라는 이름의 제도 아래서 아무 때고 비저 나오는 세속의 속살. 나짱의 표정. 선체는 전 지구적 ‘범박’의 표정을 싣고 이리로 기우뚱, 저리로 기우뚱하고 있었다. 나는 햇볕에 타 홧홧해진 목덜미를 만지며, 문득 선글라스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후회하고 있었다.

김애란/ 소설가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