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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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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괴물>에게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 애가, 현서(고아성)가 살아 있다! 비통한 눈물을 닦아내기 무섭게 가족들은 다른 공포에 목이 졸린다. “현서가 거기서 굶은 게 며칠째지?” 고모 남주(배두나)가 다급히 묻자, 둔한 아빠 강두(송강호)가 비명을 지른다. “뭘 먹지? 거기서?” 가상 생물체가 나오는 영화 <괴물>은 넒은 의미의 판타지다. 하지만 <괴물>의 극중 세계(디에게시스,diegesis) 안에서 유일한 판타지 신은, 현서를 구하러 나선 가족들이 끼니를 때우는 대목에 나타난다. 하수구를 수색하다 지친 박희봉(변희봉)과 강두, 남주, 남일(박해일)은 한강 둔치 매점에 숨어든다. 희봉은 모자란 끓는 물을 네 그릇의 컵라면에 알뜰히 붓는다. 세상에서 가장 누추한 식탁 앞에 ‘식구’라는 이들이 둘러앉는다. 허름한 밥상만 조명을 받아 빛나고 지친 사람들은 말이 없다.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의 구도다. 면발이 익기를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 탈진한 채 컵라면 뚜껑 위로 고개를 내리깐 박씨 가족의 모습은, 흡사 경건한 기도의 한때처럼 보인다. 네 식구 중 제일 뒤늦게 젓가락을 드는 것은 강두다. 그는 딸의 휴대전화를 새로 사주기 위해 거스름돈을 모았던 컵라면 용기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남주와 강두 사이에서 현서가 낮잠에서라도 깨나듯 스르륵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굵직한 김밥을 한입 베어 문다. 식구들은 놀란 기색이 없고 카메라도 자리를 지킨다. 물끄러미 딸을 보던 강두가 먼저 삶은 계란에 소금을 찍어 건넨다. 고모는 조카의 보드라운 뺨을 쓰다듬고 삼촌은 껍질 벗긴 소시지를 내민다. 할아버지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어 현서의 입으로 나른다. 그동안 딸이 좋아할 만한 다른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강두는 과일 통조림을 집어 든다. 이 무언극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굶주린 아이를 두고 허기를 채워야 하는 어른들의 체할 듯한 죄책감과 슬픔을 그린다. 라면과 김밥, 만두와 소시지를 삼키며 가족은 그 음식물이 현서의 목과 위장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을 상상하고 있다. 만화식으로 말해서 이 장면의 현서는 네 식구의 머리 위로 떠오른 생각의 풍선 속에 존재한다. 한편 현실의 현서는 괴물의 둥지에서 낙숫물을 찍어 입술을 적시고 있다. 현서가 마지막으로 맛본 음식이 맥주였다는 사실은 특별히 불길하고 잔인하다. 소녀는 어쩌면 영원히 다시 맛보지 못할 성년의 한 모금을 애타게 갈증내고 있다. 강두는 끝내 현서를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 <괴물>은 실패한 구조담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해결의 안도감을 남기는 까닭은, 강두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줄 다른 아이를 얻기 때문이다. 죽은 딸이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던 그 아이, 세주는 공동체의 관용을 대변하는 관행, ‘서리’로 연명하며 살아온 소년이다. (영화 속 회상에 따르면 강두 역시 서리로 배를 채우며 자랐다.) 괴물이 한강 둔치를 휩쓸었을 때도 강두는 딸 대신 엉뚱한 여자애를 끌고 도망쳤다. <괴물>이 관심을 둔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서리’와 우연한 손잡음으로 연결된 가족이다. <씨네21> 편집위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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