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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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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우리가 김선우(이병헌)를 처음 소개받는 장소는 그의 일터다.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 선우는 자신이 관리하는 호텔 바 ‘달콤한 인생’에서 초콜릿 무스를 음미하고 있다. 시나리오 단계의 메뉴는 스테이크였다고 한다. “선우라는 인물을 만들어 가다보니 고기를 질겅질겅 뜯을 성싶지가 않더라”고 김지운 감독은 설명한다. 선우는 피와 욕설로 질척이는 조폭 세계에서 필사적으로 스타일을 지탱하는 청년이다. 스카이라운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세련된 자태는 그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신기루다.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싸움꾼인 선우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자는 달콤함에 대한 탐닉을, 미각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초콜릿 무스는 무절제의 기호다.(진한 초콜릿의 맛은 아련한 죄책감을 자아낸다.) 생활의 온기가 결핍된 선우의 썰렁한 집에서 제법 살림살이가 갖춰진 코너는 주방뿐이다. 영화 중반에 운이 반전되기 전까지 선우는 에스프레소, 껌, 오뎅, 딤섬 등을 연신 우물거린다. 선우의 식성은 <오션스> 연작의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구순기의 아기처럼 막대사탕, 아이스크림, 스낵을 입에서 떼지 않는 미남 범죄자를 상기시킨다.
‘업무’를 수행할 때에도 취향은 표가 난다. 호텔 룸살롱의 첫 액션 신에서 선우는 드잡이는 전혀 없이 민첩한 발차기만으로 깡패들을 제압한다. 그는 거의, 혐오스런 상대들과 신체 접촉을 꺼리는 듯하다. 무례와 불결함에 대한 선우의 생래적 혐오감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장면은 보스 강 사장(김영철)과 마주한 식사 장면이다. 순서대로 요리가 나오는 고급 한식집. 카메라는 전복 접시를 든 종업원을 뒤따라 별실로 들어간다. 강 사장과 선우는 흠잡을 데 없는 옷차림과 식탁 예절로 음식을 맛보고 있다. 이때 선우의 라이벌인 문석(김뢰하)이 뛰어 들어온다. 그의 씩씩대는 호흡과 부주의한 몸짓, 무례한 말투는 강 사장과 선우가 그럴듯하게 형성해 놓은 공기를 망쳐버린다. 자기 앞접시로 문석의 젓가락이 함부로 침범해 들어올 때 선우의 내리깐 눈썹과 입은 미세하게, 그러나 또렷이 일그러진다. 권위를 표상하는 강 사장의 뒷덜미는 선우와 문석을 화면 양쪽으로 갈라놓는다. 나중에 문석이 부탁하는 투로 선우를 붙드는 대목에서 선우는 검불이 붙은 듯 옷깃부터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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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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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든 여자(신민아)가 “아저씨 해결사죠?”라고 물었을 때 선우는 극구 부정한다. “그때 명함 드렸잖아요. 저 호텔에서 일해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물론,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파괴된다.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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