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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1 17:53 수정 : 2007.06.29 13:54

김인숙 사장.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고형욱의 우리 시대 요리사들

외할머니 어깨너머 배운 요리를 고집하는 ‘대장금’ 김인숙 사장

6년 전 장충동에 식당 문을 열 때 상호는 토방이었다. 지금은 대장금이다. 드라마로,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인기를 끈 대장금이라는 이름을 그냥 가져다 쓰는 건 아니다.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부터 방송사와 얘기가 오갔고, 음식에 대한 자문도 해주었다. 그런 연유로 상호를 바꾸게 된 것이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음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김인숙 사장은 자신이 자랐던 부안 음식을 고수하면서 맛과 모양을 지키고 있다. 외할머니 어깨너머로 배웠던 음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위하여 먹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하여

우리 음식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사람에게 요리사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 모호할 때가 많다. 아직까지 한국 음식은 요리라는 개념보다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편한 음식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김치찌개나 냉면처럼 단품 음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에는 요리사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더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정식처럼 날마다 다른, 다양한 상을 차려낼 수 있는 이들에게 요리사라는 호칭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김인숙 사장은 식당을 운영하기에 앞서 대장금에서 나오는 모든 요리들을 만들어내는 일을 진두지휘한다. “내가 요리사인가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죠. 요리를 좋아하려면 고정 팬을 거느린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분 좋게 만들 수가 있잖아요? 우리 신랑이 그래요. 아직도 집밥을 고수하는 간 큰 남자죠.”


식당에서 손님들과 만나기 이전에 김인숙은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잘 먹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식당을 하므로 손님들의 존재가 중요한 건 맞는 얘기다. 그러나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자세가 항상 기본을 갖추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마음으로 설득하는 게 순서라는 말이다.

무더운 햇살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날 김인숙 사장을 만났다. 그는 봉사 활동을 나가서 500명분 죽을 쑤어주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오늘도 죽을 먹는데, 계속 똑같은 것만 먹자니 뭔가 허전한 거예요. 배만 채우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게 한 가지만 단조롭게 먹는 걸 싫어해요. 그러니까 한정식을 하는 거겠지.” 날마다 시장에 나오는 새로운 재료들로 만들어나가는 하루하루의 변화.

“음식의 주제가 반복되는 건 싫어요. 손님에 대한,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죠. 김치를 한 가지라도 더 담가두었다가 변화를 주듯이, 때로는 질그릇에, 때로는 모양이 예쁜 접시에 담아내는 거예요. 더구나 식당은 어찌 됐든 상행위를 하는 거잖아요? 먹는 사람 기분 좋게 만들어주자. 음식을 한 가지씩 꽃을 피워서 손님을 기쁘게 만들어주자. 뭐, 이런 생각이 우선 아닐까요?”

오방색, 그 자연스러운 색깔

한식은 어렵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들기도 어렵지만 사람들의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무언가 다르고 어렵다고 여기지만 한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투다. 우리가 늘 볼 수 있기 때문에 폄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음식은 여자들이 더 안 먹어요. 진짜로 사람들 속내를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정말 먹을 게 없어질 수도 있어요. 우리 것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안 드나 봐요.” 요즘은 누구나 맛을 내기보다는 음식을 예쁘게 만드는 데 더 마음을 쓴다. 예쁘게만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육을 받아 배울 수 있는 문제이니까. 그러나 예쁘면서도 활기가 있고, 생동감이 넘치는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진정한 요리의 영역이니까.

“맞아요. 누구나 접시에 예쁘게 담아요. 그런데 겉만 그런 것 같아요. 요리가 살아서 움직여야 하는데 …. 어떻게 놓느냐, 어떻게 담느냐 하는 건 먹고 싶은 마음을 들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는 것 같아요.”

음식의 맛은 중요하다. 그래서 그가 자라면서 먹어온 부안 음식에 더더욱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은 맛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형태와 색깔이 고왔기 때문이다. “요리의 색깔이 얼마나 좋아요? 오방색이 무언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린 항상 그 속에서 살아왔잖아요? 어릴 때, 내내 부안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랐어요. 그렇게 봐왔던 색깔들을, 자연스러운 색깔들을 음식으로 담아내는 거죠. 흰깨, 까만깨, 노란 계란, 흰 계란, 빨간 고추, 이런 모든 재료들에 그 자체의 색깔이 있고, 바로 거기에 오방색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는 언제나 남에게 퍼주는 걸 좋아한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느끼곤 한다. 우리네 아줌마들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아는 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이들에게 음식과 인심을 퍼주는 것이 우리가 애정을 느끼게 되는 아줌마다운 정서가 아닐까. 그런 후덕함이 삶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혹은 식당 주인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우리 음식은, 한정식은 무엇일까.

“시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돈은 삼성동 본점에서 벌고, 여기 장충동에서는 문화를 살리고 싶은 거죠. 한정식은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짜내면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가 빠져도 시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거죠.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고,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를 묵묵히 지키는 것, 그게 우리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고형욱. 사진 박미향 기자
식초를 열댓 가지 담그죠. 솔잎이 얼마나 숙성됐는지, 담근 매실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날마다 확인해야 해요. 맛을 하나씩 하나씩 던졌을 때의 다른 느낌들을 잡기 위해서.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 손님들이 다 안다고, 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아요.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음식점 하고 싶지 않아요.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은 아닌데 …. 이곳에서 음식 문화를 하나라도 회복시키고 싶은 거죠. 태엽을 계속 감지만 가끔 맥이 풀려요. 그러다가 문득 느끼는 거죠. 아, 내가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웃음) 시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니까.”

재래시장에 있을 때의 행복감은 식당을 빠져나올 때 늘어서 있는 장독대에서 느껴진다. 거기서 장이 익어간다. 된장 한 숟가락이 만들어내는 우리 음식의 미학, 그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픈 이가 김인숙이다.

고형욱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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