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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4 16:30 수정 : 2007.07.04 21:36

<청연>

[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청연>(2005)

행복의 까다로움은 익히 알려져 있다. 행복은 대개 불행보다 미끄러워 붙들기 어렵고, 정의하기 난감하며,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다. 그런데 역사는 이따금 한 술 더 떠 행복을 터부로 만든다. 공동체가 심한 고난에 처한 시대는, 개인으로 하여금 사적인 행복을 일수 이자로 얻은 빚으로 느끼게 한다.

윤종찬 감독의 <청연>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조선 출신 비행사 박경원(장진영)의 일대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를 여는 이미지는, 일본군이 행진하는 길가에, 통곡하는 마을 어른들과 신바람 난 아이들이 뒤섞인 광경이다. 공부 욕심이 많은 경원에게 먼저 넘어야 할 벽은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라, 계집애가 학교가 웬 말이냐 질색하는 조선의 아버지다. 열 한 살의 어느 해질녘, 경원은 언덕에서 진짜 비행기를 목격하고 벼락같이 매혹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순간이다. 낮게 나는 비행기 동체의 육중한 그림자에 감싸인 작은 소녀는 황홀해한다. 그러나 관객은 비행기 꼬리가 뿜어 올리는 불길한 검은 연기를 본다. <청연>에서 행복의 이미지는 이처럼 불행 혹은 슬픔과 반복하여 등을 맞댄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행복이 죄스러운 일이 될까 염려하듯.

일본 다치가와 비행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원의 생활은 꽤 쾌활해 보인다. 경원과 애인 지혁(김주혁), 비행학교 조선인 후배 정희와 세기는 자주 술자리를 같이한다. 그러나 자못 즐거워 보이는 넷 중 한둘은 언제나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폭음하고 위액을 토한다. 술은 제일 수월한 자기 학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그들은 노래한다. 영화의 액션 클라이맥스에서도 희열과 고통은 병치된다. 억울하게 전일본 비행대회 학교 대표 선발에서 떨어졌던 경원은, 후배 세기의 갑작스런 중상으로 비행 고도를 겨루는 종목에 출전한다. 4천미터, 4천5백미터. 구름을 뚫고 상승한 그가 기록을 깨는 찰나의 클로즈업은, 조선인 후배가 수술실에서 숨지는 순간과 교차 편집된다. 무아지경에 이른 경원의 표정은 성취감의 열락 같기도 하고 비탄에 저항하는 모습인 듯도 하다.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순도 100%의 행복은 다시 금기시된다. 경원의 비행기는 투신 자살을 연상시키는 수직선을 그리며 하강한다.

실제 박경원은 “가장 행복하고 달콤했던 순간은 하늘로 비상할 때였노라”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청연>은 경원이 느끼는 창공의 감각적 매력과 비행의 쾌감을 설명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보다 <청연>의 하늘은 다른 무엇의 안티 테제, ‘지금 여기’와 ‘땅’의 반대말로 존재한다. 영화 속 경원은 하늘이 왜 좋은지 묻는 지혁에게 “하늘에 올라가면 조선인·일본인·여자·남자 그런 게 상관 없잖아”라고 대답한다. 경원이 사랑하는 하늘은 “현실이 사라지는 곳”이다. 영화는 죽은 경원이 고향 상공을 낮게 나는 환상적 에필로그를 덧붙인다. 그는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은 잠이 부른 꿈속에서야 행복하게 땅을 향해 손을 흔든다.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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