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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못 가지만, 베란다 정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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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태양이 지글거리니, 여기저기에서 물어온다. “올여름엔 어디 여행 갈 계획 없으세요?” “여름휴가에 겪은 재미있는 여행담 좀 써 주세요.” 나와는 참 먼 나라의 이야기다. 일단 ‘월급 받는 휴가’라는 직장인 최고의 아이템이 내게 있을 수가 있나. 거기에 모두들 항공기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성수기는 피해 주는 게 우리 같은 자유 직업인의 도리겠지. 가장 큰 문제는 내 화단에 있는 수십 수백의 아이들이 하루같이 “흙 줘, 물 줘, 더워, 벌레 떼 줘. 너 게을러!” 하며 노래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원두막에서 칭얼대며 참외나 깎아 먹은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농사꾼의 아들이라 여름은 땀 흘릴 틈도 없이 바쁜 시간이라는 건 기억난다. 꽃과 풀이 축제를 벌일 때, 그들의 노예에게 휴식이란 없다. 관광버스라도 타려면 가을걷이 끝난 벌판이 한참이나 허허로워져야 한다. 허나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해 저문 화단에 초를 켜고, 지난 여행 사진을 꺼내 본다. 어랍쇼! 알람브라 궁전 화단에 피어 있던 이 새빨간 녀석은? 그저께 큰맘 먹고 사 온 특이한 빛깔의 아이비 제라늄이다. 지중해 사모스 섬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온 그 숲은, 아무래도 라벤더 관목이다. 내 화분의 빈약한 풀포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치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지만 말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잘것없는 베란다 정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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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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