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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4 18:06 수정 : 2007.07.04 21:14

여행은 못 가지만, 베란다 정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로 가득하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태양이 지글거리니, 여기저기에서 물어온다. “올여름엔 어디 여행 갈 계획 없으세요?” “여름휴가에 겪은 재미있는 여행담 좀 써 주세요.” 나와는 참 먼 나라의 이야기다. 일단 ‘월급 받는 휴가’라는 직장인 최고의 아이템이 내게 있을 수가 있나. 거기에 모두들 항공기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성수기는 피해 주는 게 우리 같은 자유 직업인의 도리겠지. 가장 큰 문제는 내 화단에 있는 수십 수백의 아이들이 하루같이 “흙 줘, 물 줘, 더워, 벌레 떼 줘. 너 게을러!” 하며 노래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원두막에서 칭얼대며 참외나 깎아 먹은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농사꾼의 아들이라 여름은 땀 흘릴 틈도 없이 바쁜 시간이라는 건 기억난다. 꽃과 풀이 축제를 벌일 때, 그들의 노예에게 휴식이란 없다. 관광버스라도 타려면 가을걷이 끝난 벌판이 한참이나 허허로워져야 한다.

허나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해 저문 화단에 초를 켜고, 지난 여행 사진을 꺼내 본다. 어랍쇼! 알람브라 궁전 화단에 피어 있던 이 새빨간 녀석은? 그저께 큰맘 먹고 사 온 특이한 빛깔의 아이비 제라늄이다. 지중해 사모스 섬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온 그 숲은, 아무래도 라벤더 관목이다. 내 화분의 빈약한 풀포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치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지만 말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잘것없는 베란다 정원이지만,

이명석/저술업자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로 가득하다. 이 계절에 제일 투정 없이 잘 자라는 채송화는 토속적인 이름과는 달리 남아메리카가 고향이다. 그 옆에 분홍색 솜털 꽃을 뽀글뽀글 피우고 있는 아게라텀은 멕시코에서 날아왔다. 날마다 꽃이 피었다 저무는 일일초의 영어식 이름은 마다가스카르 페리윙클, 캐리비안 해적들이 마지막 낙원으로 삼았던 아프리카의 섬에서 태어났구나. 그래서 별명이 사형수의 꽃?

그래. 정원의 탄생에는 저 먼 이국의 풍경을 항상 곁에 두고 싶었던 마음이 적지 않았지. 정원사는 땅을 떠나기 어렵지만, 마음 깊은 곳의 여행자일 수밖에 없다. 나는 모하카르의 작은 사막을 그리워하며, 선인장 몇 녀석을 구하러 나간다. 올 겨울엔 더 큰 사막에 가 볼 수 있을까?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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