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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4 18:41 수정 : 2007.07.04 18:58

신라호텔 총주방장 서상호.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고형욱의 우리 시대 요리사

■ 후덕하되 매서운 눈매, 30여년간 한자리를 지킨 신라호텔 총주방장 서상호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멍청한 질문을 던져본다.

“요리를 하다가 생기는 제일 재미있는 상황은 뭔가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서상호 주방장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곤 특유의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은 그런 걸 제일 궁금해하나 봅니다. 그죠? 잘 아시다시피 실제로는 재미있는 거 별로 없다고요. 그죠?”

성공한 동료들, 실패한 동료들


“그죠?”라고 반문하는 소리는 서상호 주방장 특유의 후렴구다. 그의 말처럼 식당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별로 생기질 않는다. 만약 재미있거나 황당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고 하면 아마도 그 식당은 문제가 많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음식이 잘못되는 경우도 드물고…. 간혹 잘못된다고 해도 금방 다시 하면 되니까. 실제로 재밌는 게 있겠습니까? 그런 경우는 있겠지요. 주방이 없는 경우는 묘한 상황이 벌어질 수가 있어요. 그죠?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포항에 출판 기념회가 있어서 출장 파티를 하러 갔는데, 장소가 체육관인 거라. 뭘 할 수가 있습니까? 손님은 한 800명 정도 되는데. 물은 화장실에서 받아 오고, 닦는 건 하나도 안 하고 전부 다 때려 싣고 오는 거죠. 이동식 냉장고 같은 거 쓰고…. 그럴 때는 막막하죠. 아니면 여름에 야외에 주방을 설치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도 있어요. 그런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건 사고가 벌어질 일이 별로 없어요. 그죠?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아주 작은 일만 생겨도 큰일처럼 여겨지는 거지. 중요한 파티가 있는데 재료가 없다거나, 그런데 그래도 다 구해서 한다구요.”

예전에는 종교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도들이 먹는 할랄을 한 돼지고기나 닭고기 같은 재료들. 그러나 요즘이야 이태원에만 나가도 전부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호텔 주방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 언제나 바쁘게 조직적으로 돌아가는 공간에서 그런 재미있는 상황들, 황당한 상황들이 벌어지기란 힘든 일이다.

신라호텔이 문을 연 것은 1979년 5월이다. 서상호 주방장은 오픈 준비를 하기 위해 그해 3월30일에 입사했다. 신라호텔에서만 28년 넘게 요리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 넉넉하고 낙관적이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직장 생활로는 여기가 좋지요. 있던 데가 편하잖아요?(웃음) 완전히 새로운 걸 한다면 몰라도. 그동안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죠. 안효주는 식당 차려서 완전히 성공했고…. 잘된다 카죠? 그거 힘든 건데. 나도 지하 1층에 있던 뷔페식당 셀비아에 가 있다가, 영빈관으로 갔다가, 그사이에 라 폰타나가 비체가 되고, 지금은 이태리 식당 없어지고, 한식당 없어지면서 그 자리에 일식당 내려오고…. 30년 가까이 되니까 많이 바뀌었다. 그죠?”

신라호텔에서 함께 일하다가 자신의 일식당을 운영하는 안효주 주방장 얘기를 하면서 그의 성공을 축하해 마지않지만, 실패한 동료들 또한 많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13~14코스요리 반응 들으며 자기 평가

“호텔에 있다 보면 세상 물정을 몰라요. 음식만 만드는 거랑, 직접 운영을 하는 건 다르죠.”

단조롭고 반복되는 식당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메뉴를 매일 개발하고 있는 요리사는 실제로 드물다. 어느 정도의 패턴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 일하러 들어온 신세대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왜 똑같은 일만 매일 하는 겁니까? 이렇게 물어봐요. 쳇바퀴 도는 것 같다는 거죠. 학교에서는 매일 다른 요리를 배웠는데, 왜 식당에서는 같은 일만 하냐는 거죠. 매일 같은 걸 하는 건 하나를 제대로 숙달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주방에서는 누구보다도 진지하지만, 주방 밖으로 나왔을 때의 서상호 주방장은 편안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한테서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보고 재밌게 산다고 그러는데 자기 기준이나 보는 관점이 중요한 거겠죠?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해요. 내가 돈이 많으면 매일 요리를 먹으러 다니겠다. 노력을 해도 매일 맛있는 요리, 좋은 요리만 할 수는 없더라고요. 같은 손님도 매일 맛있다고는 안 하거든요. 요리가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요. 어떤 때는 이 요리가 잘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르고….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가끔 특이한 연회를 준비하죠. 특별 메뉴를 준비해서 13~14코스 정도 준비하는 거죠. 반응들 듣고 체크하면서 내 스스로 능력에 대한 평가를 받는 거죠. 어쨌든 내가 불란서 사람은 아니잖아요?(웃음) 한식은 참 어려운 거 같아요. 외국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쉽지 않고,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요즘은 유학들 많이 갑니다


고형욱 음식 칼럼니스트
요즘은 젊은 요리사들이나 스태프들이 공부에 열성적이다. “우리 호텔에서도 휴직하고 유학들 많이 갑니다. 층이 넓어져야죠.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나,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나. 외국에서는 5시에 오픈하고 밤 1시, 2시까지 영업하는 식당들 많잖아요? 두 바퀴 돌기도 하기고, 어떤 테이블은 세 번에 걸쳐 손님들이 앉기도 하고. 식당을 하면서 서로가 즐기는 거죠. 단지 밥을 먹는다는 게 아니라 전체를, 그날 하루를 완전히 즐기는 거죠. 서로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 아닙니까? 그죠?”

언제나 후덕하게 음식을 퍼줄 것 같지만, 주방에 들어서면 눈빛이 더욱 반짝이는 게 요리사 서상호의 모습이다. 언제나 신라호텔의 지킴이 같은 인상을 주는 그는 오늘도 프랑스식당 라 컨티넨탈부터 뷔페식당까지 일일이 관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고형욱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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