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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1 16:20 수정 : 2007.07.11 18:37

<칠수와 만수>(1988)

[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칠수와 만수>(1988)

자전거는 대지를 꾸역꾸역 밀고 나아가는 탈것이다. 긴장을 유지하며 다리에 내내 힘을 주어 구르지 않으면, 자전거는 운전자와 함께 쓰러진다. 발을 구른 만큼 가는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우리를 감쪽같이 먼 장소로 데려다 놓지 않는다. 페달과 체인과 바퀴로 이루어진 작동의 내막을 앙상하고 정직하게 노출한 자전거는 생김새가 곧 기능인 기계이며, 사람이 앉았을 때 이윽고 완전한 형태를 이룬다. 오직 제 근육으로 생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아름답게 어울린다.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왕 샤오슈아이의 <북경 자전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칠수와 만수>의 자전거는 주인공들의 생계수단이다. <칠수와 만수>의 무대는 올림픽이 열려 흥청거린 그해 서울. 장칠수와 박만수는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사람들이다. 일용직 도장공 박만수(안성기)는 양심수 아버지를 가진 까닭에 연좌제에 걸려, 해외 건설현장 취업이 좌절됐다. 그의 조수 노릇을 하며 얹혀 사는 장칠수(박중훈)는 대학생 행세를 하며 여자를 사귀고, 입만 열면 미국으로 이민 가네 큰소리친다. 만수는 주류 사회에서 내쳐진 자고 칠수는 언제까지 문 밖에서 기웃거리는 자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들의 서울살이에는 뿌리가 돋지 않는다. 없을 때가 더 많은 일거리를 따내려고 만수는 여러 지방 사투리를 흉내 내며 공사 감독들의 고향 후배인 척한다. 신축 아파트 외벽에 밧줄로 매달린 칠수는 도시의 고도에 위협받는다. 소주를 팔지 않는 나이트클럽에서, 화장실을 쓰려고 발을 들인 백화점에서, 두 사람은 주눅 들지 않으려면 쓸쓸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

공친 지 한참 만에 보수공사 일감을 얻은 만수와 칠수가 일터로 가는 장면은, 그들이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다. 만수가 손수 개조한 2인승 자전거 위에, 두 남자는 몸을 달아맬 줄과 페인트 통을 싣고 올라탄다. 지하철 3호선 교각의 그늘을 벗어나 아침 햇볕 속으로 나아가는 두 남자와 자전거가 짓는 천진한 표정을, 고(故) 유영길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숨죽여 지켜본다. 언제나 안으로 숙어 있던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만수의 어깨는 부드럽게 열리고, 뒷자리 칠수의 입가에는 허세가 아닌 진짜배기 웃음이 번진다. 가난한 이웃들이 서성이는 공터를 가로지르며, 둘은 단골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 목례를 보내고 화답을 받는다. 오늘 밤에도, 그들은 다시 그녀의 가게로부터 긴 그림자를 끌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순간만큼 저 멀리 신축 아파트 단지는 옥수동 빈촌의 초라한 공터를 압도하지 못한다.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고 있는 남자들은 칠수와 만수인 동시에 배우 박중훈과 안성기다. 지금 스물두 살의 박중훈은 청춘 스타의 요람을 홀연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만수는 안성기가 청년의 얼굴로 연기하는 마지막 캐릭터다.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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