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7.18 16:28 수정 : 2007.07.18 16:40

죄책감을 덜어 주소서

[매거진 Esc] 메뉴판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고깃집들의 간판이다. 길거리의 고깃집 간판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어째서 간판에다 소와 돼지를 그토록 귀엽게 그려 놓는 것일까. 귀여운 소와 돼지 그림을 보고 죄책감을 느껴 고기를 덜 먹게 하려는 것일까?(우리의 채식을 위해 장사를 포기했단 말인가) 아니면 인간의 가학적 쾌감을 극도화시키기 위한 것일까.(그렇다면 너무 잔인합니다) 앙증맞게 나를 내려다보는 소와 돼지의 웃는 표정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고기를 먹으란 말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압구정동의 레스토랑 ‘르 삐에’(Le Pied)를 다녀왔다.

죄책감을 덜어 주소서
그 집 메뉴판에 그려진 돼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정도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적당한 돼지가 아닐까’ 싶었다. (아마도 가족일 듯싶은) 돼지 세 마리가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의 비애’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죄책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르 삐에의 주 요리는 ‘노르망디식 돼지족 요리’다. 돼지족을 오렌지와 사과로 마리네이드한(재운) 뒤 벌꿀을 발라 구운 것인데, 그간 맛보았던 돼지족과는 달리 달콤한 맛이 독특한 요리였다. 칼과 포크로 쓱싹쓱싹 썰어 먹는 재미도 좋고, 졸깃한 뼈를 오도독 씹어먹는 맛도 별나다. 하지만 이 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은 올리브였다. 식전에 내놓은 올리브는 어찌나 맛있는지 눈치보면서 세 접시나 먹었다. 싱그럽고 산뜻한 맛이었다. 돼지의 죽음보다는 올리브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덜 가슴 아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중혁 기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