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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8 16:48 수정 : 2007.07.18 16:48

<고양이를 부탁해>(2001)

[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

인천에 사는 스무 살 태희(배두나)는 여상을 졸업하고 1년째 놀고 있다, 고 다들 말한다. 그러나 태희는 누구보다 바쁘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찜질방 카운터를 보고 전단을 돌린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에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믿는 일을 한다. 뇌성마비 시인이 불러주는 시를 타자로 종이에 옮기고, 여객터미널 사람들을 바라보며 외항선 타는 꿈을 꾼다. 한편 태희는 고교 시절 친구들이 서로를 잊지 않도록 동분서주한다. 갓 세상 속으로 흩어진 친구들의 작은 관제탑이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부를 챙기고 도움을 요청받으면 달려간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태희가 시간을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태희가 지닌 교감과 연민의 특별한 재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시된다. 증권회사에 취직한 친구 혜주(이요원)조차 충고한다. “넌 언제까지나 도우미로 지낼 거니? 그렇게 살다간 이용만 당해.” 하지만 눈 수술을 받은 날 혜주가 불러내는 것도 태희다.

<고양이를 부탁해>에는 태희가 만두를 먹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온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영이 연락을 끊자, 태희는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얽히고 설킨 가난한 동네의 골목을 헤매다 도착한 곳에 지영은 없다. 방 저쪽에는 몸져누운 할아버지가 보이고 처음 본 손녀 친구가 반가운 할머니는 만두를 내온다. 지키고 앉아 식은 만두를 일일이 집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을 태희는 사양하지 못한다. 입 안 만두를 삼키지 못한 채 또 한 개의 만두를 받아든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온 힘을 다해 먹는다. 소녀의 목을 메게 하는 덩어리가 만두인지, 애틋함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두 번째 만두는 태희가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할 즈음 등장한다. 조부모의 죽음으로 분류 심사원에 수용된 지영의 출소를 기다리며, 태희는 방에 틀어박혀 고민에 빠진다. 만두 심부름을 시키는 오빠에게 그녀는 “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항의하지만 그게 노는 거 아니냐는 답이 돌아온다. 만두를 산 태희는 식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구들에게로 돌아가기 전, 길에 선 채로 따뜻한 만두 하나를 혼자 천천히 맛본다.

배두나의 태희는 아마도 한국 영화를 통틀어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일 것이다. 선의와 배려는, 감독이나 배우가 인물에게 강요한 규범이 아니라, 이 인물의 천품이다. 그는 행상이 내미는 자질구레한 물건을 꼬박꼬박 유심히 들여다보고, 텅 빈 얼굴로 거리를 헤매는 거지 여인이 매일 뭘 하고 지내는지 따라가 보고 싶어한다. 영화의 최종 편집본에서 빠진 한 장면에서 태희는 진지하게 묻는다. “나 정치인이 되는 게 어떨까?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 이런 대사를 진심으로 공감하며 듣게 만드는 인물은 흔치 않다.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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