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뿌엔떼 누에보는 깊은 계곡 위에 걸려있다. 18세기 도시공학의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
[매거진 ESc] 나의 도시 이야기 / 아나운서 손미나의 론다
스페인에서 석사 학위 코스를 밟고 있던 몇 해 전 여름, 나는 오랜 소망이었던 스페인 남부 ‘하얀’ 마을 여행에 나섰다. 십 년이 넘게 꿈에 그리던 도시 론다(Ronda)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소통시켜주는 관문인 따리파(Tarifa)를 꼭짓점으로 해서 이베리아 반도 남쪽에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지역의 산악 지대에는 아랍인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마을들이 모여 있다. 론다는 그렇게 아랍인들의 전통에 따라 하얗게 지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뿌에블로스 블랑꼬스’(pueblos blancos, 흰색 마을들)라고 하는 총 17개의 마을 중 하나다.
따리파에서 차를 빌려 타고 꼬불꼬불한 안달루시아의 산길을 따라 두어 시간을 달린 끝에 론다에 도착했다. 지도를 볼 것도 없이 일단 차를 세우고 광장을 가로질러 다리가 있는 쪽으로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단 몇 분 만에 발 아래로 독특한 모양의 석회암 절벽이 끝도 없이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하게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험한 절벽들과 그 틈새의 바위 위에는 새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얹혀져 있었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도 저렇겠지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면서 정말 론다에 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절벽을 따라 천천히 마을을 산책한 뒤에는 론다의 역사 깊은 투우장 구경에 나섰다.
론다는 스페인 투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론다의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됐고 해마다 가장 중요한 경기가 열린다. 그래서 투우사들에게는 론다에서 경기를 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다. 대도시의 투우장에 견주면 규모가 훨씬 작지만, 계단마다 아랍풍의 푸른색 문양이 들어간 타일이 장식되어 있어서 고급스러우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또 투우장 한쪽에는 시대별 투우사들의 복장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현대 투우 경기의 아버지라 하는 투우사 뻬드로 로메로(Pedro Romero)의 무덤이 투우장 어딘가에 있다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사실 론다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론다의 옛 시가지와 새 시가지를 잇는 다리, 뿌엔떼 누에보(Puente Nuevo)였다. 걸어서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지도를 보며 마을 외곽을 둘러싼 성문을 통과했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한동안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더니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어딘가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나는 그들이 바로 뿌엔떼 누에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한 장의 사진 속 뿌엔떼 누에보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럴 수가… 놀라운 그 모습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깊이 100m가 넘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절벽을 잇는 다리, 계곡 양쪽의 절벽 위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하얀 집들, 그리고 그 틈새 저편으로 보이는 백색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18세기 도시공학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그 다리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한참 고개를 쳐들고 바라봐야 할 정도로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다리와 절벽 위의 집들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하얀색 마을을 품고 있는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내려앉던 그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 그 작은 하얀 마을들의 골목골목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어 보는 상상만으로도 내 얼굴과 마음에는 환한 웃음이 번진다.
손미나 아나운서·여행작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