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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26 18:09 수정 : 2007.07.26 18:09

보양식인 흑염소 방목이 주민들의 주수입원이다.

[매거진 Esc]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④ 박하선의 가거도

바람을 따라서 나리꽃, 엉겅퀴가 핀 풀밭 사이를 걷다가 산딸기를 따먹는다. 벼랑 끝 바위에 걸터앉아 꽃나비와 친구하며 망망한 바다와 암벽에 부서지는 백파를 바라본다. 혼탁한 속세에서 벗어나 먼곳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함은 물론이요, 세상에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쉬게끔 하는 데 제격이다. 만일 이런 곳에 귀양살이 왔다면 그건 호사스러운 것이다.

목포에서 여객선으로 145km 떨어진 한국 영토의 최서남단인 가거도. 일제 강점기 때 ‘소흑산도’라 불리기도 했지만 원래 이름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였고, 지금은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倨島)라 불린다. 지금은 쾌속선이 다녀 육지와의 연결이 빨라졌지만, 망망대해를 건너야 하기에 풍랑이 조금만 일어도 결항해 찾기가 쉽지 않은 섬이다.

동고개 해수욕장의 잔잔한 파도가 아름답다.
가거도 인근 섬인 개린도 역시 가거도를 찾은 이들이 들러 볼만 하다.
최서남단, 상하이 닭울음소리 들린다?

가거도는 전남 신안군에서 제일 높은 산인 독실산(639m)을 중심으로 섬 전체가 절벽이다. 웅장하고 기괴한 절경과 함께 ‘섬다운 섬’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잘 연결되는 휴대전화가 아니라면 이국의 한 섬에라도 와 있듯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상하이에서 우는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곳이 바로 이곳 가거도가 아니던가.

미리 예약해 놓은 민박집 주인이 트럭을 몰고 대리 포구에 마중을 나왔다. 서로 ‘생면부지’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 양 인사를 나누고 산등성이를 넘어 2구인 ‘항리’ 마을로 향한다.

가거도에는 세 군데 마을이 있다. 다른 한 곳은 뱃길로만 연결이 되는 ‘대풍리’. 등대가 있는 곳이다. 사실 마을이라 해도 과거 ‘굴섬 마을’이라 불렸던 1구인 ‘대리’ 말고는 몇 채 되는 않는 산동네다. 트럭 화물칸에 올라타고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산길을 돌아가는 건 바로 ‘트럭 사파리’의 진수다.

자갈밭에서 침묵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항리 마을에서 만난 청년. 한없이 소박해 보인다.
섬등반도 주변에 있는 항리 마을. 언덕배기에 버티고 있는 폐교가 을씨년스럽지만 그것까지도 이곳의 독특한 운치를 돋우어 주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알고 보니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 촬영의 현장이란다. ‘무엇이 볼거리’라기보다는 어떤 느낌을 가져다 주는 그 무엇이 있기에 이런 것까지 좋은 것이다.


항리 마을 산비탈에 흩어져 있는 집들은 초라하지만, 모두 별장이 들어설 만한 자리에 서 있다. 전체 60여 가구라지만 현재 13가구만이 사람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빈집들이다. 사람이 사는 가구라 해도 자녀들을 모두 뭍으로 보내고 할머니 혼자 사는 곳이 여럿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는 마땅히 할 만한 일들이 많지 않다. 인근의 흑산도만 해도 전복이나 미역 등의 양식업이 성행하고 있지만 가거도는 입지 여건상 어렵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도 거친 파도로 시원찮다. 또한 반듯한 밭뙈기 하나 없어서 농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있다면 보양식으로 쓰는 흑염소 방목과 섬 전체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후박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위장에 좋다는 한약재로 내다 파는 것이 고작이다. 이렇다 보니 모두들 떠나고 남겨진 세간 주변에 잡초만 무성하다. 그래도 담장 옆에서 무화과와 복숭아나무 열매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익어간다.

언덕에 줄지어 들어선 항리 마을의 집들. 밤이 되면 등대처럼 빛난다.
주민들은 후박나무의 껍질을 벗겨 한약재로 판다.
대어의 꿈꾸는 바다낚시 애호가들

하지만 이제 이곳 가거도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다낚시 애호가들이 대어의 꿈을 안고 새로운 전설을 만들고자 건너오고, 여름에는 국토 최서남단이라는 것에 의미를 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민박집들은 인터넷을 통해 손님맞이에 바쁘고 어부들은 자연산 횟감 마련에 신이 난다. 우리 땅을 밟고 있으면서도 마치 이국의 한 섬에 와 있는듯 기분을 들게 하는 섬다운 섬 가거도. 이름 따라 가히 살 만한 섬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가거도= 글·사진 박하선/ 사진작가

어부가 건져올린 참소라.

가거도 여행쪽지
트럭을 타거나 걷거나

■ 목포에서 운항하는 쾌속선이 매일 아침 8시에 있다. 흑산도를 거쳐 가거도에는 네 시간 뒤인 12시쯤 도착한다. 요금은 4만3600원인데, 성수기에는 10% 추가되고 중고생과 일반인 단체는 10% 깎아 준다. 여름철에는 진도 서망항에서도 가거도를 오가는 배편이 있고, 두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지만 요금은 같다.

■ 민박집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할 수 있다. 방 한 칸에 보통 3만원. 도착지인 대리 포구에 민박과 여관이 있지만, 좀더 조용하고 운치 있는 곳을 원한다면 항리 마을이 좋다. ‘라희네 민박’이나 ‘섬누리’를 비롯한 민박집이 몇 곳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걸어갈 수가 없으니 예약을 하면 주인이 트럭을 몰고 선착장으로 마중 나온다. 식사는 직접 해 먹을 수도 있고, 민박집에서 파는 것도 있는데 백반이 5천원이다.

■ 가거도에는 대중교통도 없고 일주도로도 없다.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려면 배를 빌리거나, 오가는 트럭을 얻어 타거나 아니면 걸어야 한다. 독실산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시간과 간식거리를 넉넉히 준비하는 게 좋다. 대리항을 내려다보는 데는 회룡산이 좋으며, 등산로 어귀에서 20분이면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섬 전체에 모기가 많으니 미리 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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