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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1 18:28 수정 : 2007.08.01 18:28

추리소설에선 갖가지 음식 트릭으로 사람을 죽인다. 추리소설 작가들이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한 <어 테이스트 오브 머더>.

[매거진 Esc] 음식으로 죽이는 추리소설 이야기…애거사 크리스티는 ‘독살의 여왕’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 즉 옷과 음식과 집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먹지 않고 살 수 없으니 음식이 우선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무엇은 먹어도 좋고 무엇은 못 먹는지 누구나 알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을 무렵, 남을 죽이기 위해 독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을 것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상대를 죽이려 할 때 미량으로도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 독은 무척 편리한 살해도구이지만, 상대에게 먹일 때까지 탄로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골치를 썩이는 사람들 중에는 살인자뿐만 아니라 추리작가도 있다.(거기에 추리작가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독물’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제약도 받는다.)

독살 트릭을 다룬 걸작 <독 초콜릿 사건>

독의 투입 방법은 식도를 통해 소화기로 들어가는 방법, 기체 상태로 호흡기에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피부를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 세 가지가 있다. 독가스나 독화살은 일반인이 쓰기에 좀 어려운 탓인지, 추리소설에서는 ‘먹는 방법’이 가장 많이 나오는 편이다. 우선 국내에 소개된 독살을 다룬 작품을 살펴보자.

어느 11월 아침. 런던에 사는 에드워드 준 남작 앞으로 시식용 초콜릿 상자가 배달되어 온다. 부부는 그것을 나눠 먹는데, 많이 먹은 아내는 죽고 남편은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제과회사에서는 초콜릿을 보낸 일이 없으니 이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연 두 사람을 죽여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앤서니 버클리의 단편 <우연의 심판>(1929) 이야기로 독살 트릭을 다룬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며 장편 <독 초콜릿 사건>으로 개작되었다.

출판 편집자인 스티븐스는 어느 날 작가의 원고에 첨부된 사진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200년 전의 유명한 독살자 마리 도브리의 모습이 자신의 아내 마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1937)에 등장한 마리 도브리(결혼 후의 이름은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는 실존했던 인물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독살자다. 그는 아버지와 오빠를 모두 비소로 독살해 1676년 처형되었으며, 훗날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에 대한 저서를 남겨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음식을 소재로 한 추리 관련 책들
잠깐 숨을 돌려 한 여성의 삶을 살펴보자. 수줍음 많은 이 여인은 1차대전 시절 병원에 근무하며 독극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고, 서른 살이던 1920년 ‘스타일즈 저택’에서 노부인을 처음으로 독살했으며, 197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100여 명을 살해해서 ‘범죄의 여왕’이라는 살벌한 별명까지 얻었다. 다행히도 이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두 그의 작품 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이면, 누구인지 짐작하신 분이 계실 것이다. 연쇄살인범이 아닌 추리소설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작품의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애거사 크리스티. 외국의 열성 팬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의 장편 66편에서 모두 161명이 살해되는데, 독살이 나오는 작품은 34편(51.5%), 그리고 희생자 중 38.5%에 달하는 62명이 독살당한다.(살해도구 2위는 총인데, 23명으로 독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쯤 되면 크리스티에게 ‘독살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크리스티의 작품 중 독살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3막의 비극>(1935)을 꼽을 수 있다. 은퇴한 연극배우가 개최한 파티에서 늙은 목사가 칵테일을 마시고 급작스레 쓰러져 죽는다. 왜 목사를 죽였을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목사가 마실 잔에 어떻게 들키지 않고 독을 넣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명탐정 푸아로가 풀어낸다.

죽음과 유머의 결합, 테러미수

과거 독살은 특정인을 노린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에서 훨씬 끔찍하고 안타깝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권일영 옮김, 북스피어 펴냄, 2006년)에서는 편의점의 종이팩 음료에 독을 넣어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노리는 무차별적인 범죄,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분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비소설이자 번역되지 않은 책을 하나 소개한다. 미국 여성추리작가협회(Sisters in Crime)는 <디저티사이드(Desserticide)>(1995)라는 요리책을 펴냈다. ‘디저티사이드’라는 제목은 사전에는 없는 단어로 ‘디저트(후식, dessert)’와 ‘죽임(cide)’의 합성어인데, 제목뿐만 아니라 ‘독이 든 사과 케이크’(Poisoned Apple Cake), ‘달콤한 복수 초콜릿 바’(Sweet Revenge Chocolate Bars), ‘연쇄살인범 과자’(Serial Killer Cookie), ‘티라미수’(Tiramisu)를 변형한 ‘테러-미수’(Terror-Misu) 등 기발하면서도 살벌한 이름이 붙은 요리가 수록되어 있다. 죽음과 요리를 결합한 유머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글 박광규/추리소설 평론가

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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