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08 21:41
수정 : 2007.08.0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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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여행객들은 조개를 들고 숙소인 ‘갯벌테마파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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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⑥ 이규철의 부안 모항
“붕이 한 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이 새는 바다에 태풍이 불면 남쪽바다로 이동하게 된다. 붕이 남쪽바다로 옮아갈 때에는 물을 쳐 올리되 그 높이가 3천리나 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리나 올라가 유월의 거센 바람을 안고 날아간다.”
모항을 거의 정확하게 이등분한다 싶은 등대 어귀에 앉아 모항 쪽을 바라보는데 문득 <장자>에 나오는 전설 속의 새 ‘붕’(鵬)이 떠올랐다. 태풍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붕은 다시 남쪽바다로 훌쩍 날아가고 사람들은 다시는 붕을 보지 못했으리라. 그 붕이 어쩌면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이곳까지 와 모항에 잠시 날개를 쉬었다 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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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한 군선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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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남산에서 바라본 모항은 바다에 뜬 큰 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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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곳엔 거북선이 있을까?
붕의 그림자가 느껴지듯 모항은 흡사 날개를 편 새 형상을 닮았다. 왼편으론 질퍽한 개펄이 모항의 한쪽 날개를 이루고, 오른편으론 가지런하고 결 고운 모래톱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한쪽 날개가 고요와 적막의 명상적인 공간이라면 다른 쪽 날개는 환희와 망각, 행복의 이국적인 공간이랄까.
모항 개펄에서 사람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어른 아이가 한데 어울려 개펄을 살뜰하게 헤집고 있다. 너른 개펄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호미질하는 법이나 조개 캐는 법이 아니라, 아마도 개펄의 정직성 혹은 수확의 정직성이 아닐까 싶다. 통장의 수나 거저 얻은 대가, 운 좋게 얻은 행운이 아니라 수확의 정직함을 만나는 것이다. 바가지에 조개더미가 쌓여갈 때, 그 풍성한 수확은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이 된다.
그곳에는 2004년 해양수산부 지원으로 세워진 ‘갯벌테마파크’가 있다. 가족들이 잠깐의 시간 동안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니 어촌계에서 종패를 미리 뿌려 놓아 도회에서 온 손님들에게 체험의 기쁨을 느끼도록 한 까닭이라 한다. 모항의 개펄은 그처럼 타지 손님들에게 넓고도 포근하게 열려 있다. 갯벌 한편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바로 한국방송 <불멸의 이순신>에 썼던 거북선 등 군선 세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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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과 뒤이어 펼쳐지는 갯벌은 한 폭의 동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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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의 끝자락인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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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울창한 소나무숲 너머 오른편에서 이국적인 펜션과 하얀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을 만난다. 아담한 해수욕장은 필요 이상으로 넓거나 위압적이지 않아서 가족이 단출하게 지내기 맞춤한 크기다. 아이가 어디서 놀고 있는지, 남자친구가 어디서 한눈을 팔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종일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밥때가 되어 조금만 소리를 높여 부르면 그 소리에 한달음에 달려올 법한, 그런.
마을 삼거리 슈퍼 안쪽으로 어촌의 선박과 등대에서 퍼진 갯냄새가 확 끼친다. 철이나 물때에 따라 꽃게·조기·멸치 등을 낚는다. 등대에서 마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다. 팽나무는 여느 마을의 당산나무처럼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을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먼 옛날, 먼 하늘에서 한달음에 날아온 거대한 새의 휴식을 훔쳐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기억들이 무수한 나뭇잎들로 빛난다.
문득, 커다랗게 날개를 편 모항의 바닷가가 우리네 삶과 흡사하게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때론 개펄과 같은 정직함과 묵묵함으로, 때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과 즐거움의 빛깔로, 삶은 언제나 좌우의 날개로 간신히 지탱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어느 여름날 모항의 품에 안겨 날자, 날자꾸나! 바다로, 혹은 삶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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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으로 이어지는 30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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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가족들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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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여행쪽지
갑남산, 후회하지 않으리
⊙ 모항은 무리가 없다. 물은 깊지 않고 언덕은 가파르거나 높지 않다. 하지만 마을 정수리에서 바다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쳐 인근의 채석강 못지않은 기암괴석을 빚어냈다. 그 끝자락에서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모항의 전경을 보려면 상록해수욕장 방향에 있는 선리치모텔 뒤쪽 갑남산 등산로로 20분 정도 올라간다. 이곳 전망대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가파른 언덕에서는 손을 잡아 끌어주고 올라가면, 숨이 조금 차지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모항 개펄 해수욕장은 입장료, 주차비, 샤워장이 무료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내소사, 곰소염전, 채석강, 부안영상테마파크, 새만금방조제의 인근의 볼거리를 둘러봐도 좋다. 겨울에는 모항비치텔(www.mohangbeach.com)에서 일출 일몰을 볼 수 있다.
⊙ 모항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 나들목에서 변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천일염과 젓갈로 유명한 곰소염전에 다다른다. 갯벌테마파크 이정표 쪽으로 좌회전하면 모항의 넓게 펼쳐진 날개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260㎞. 줄포 나들목(좌회전)~줄포(23번 국도에서 우회전)~영전삼거리(좌회전)~곰소~석포 삼거리(좌회전)~마동삼거리(좌회전)~모항.
- 광주 방향에서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정읍 나들목에서 나와 줄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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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방학이 시원한 물줄기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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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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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이규철/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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