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8.15 19:38 수정 : 2007.08.15 19:38

초대받지 못한 벌레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우리 정원에 헬리오트로프 씨(氏)를 들여온 게 벌써 세 번째인가? 페루에서 온 이 손님은 시폰 벨벳 같은 가지 끝에 송알송알 맺은 연보랏빛 꽃들로 일품의 향기를 뿜어낸다. 플록스(풀협죽도)와 더불어 여름 저녁의 퇴폐적인 기운을 만드는 데 이만한 화초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두 번이나 그를 죽여 내보냈다. 내 잘못이 전혀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억울한 마음은 알아주기 바란다.

헬 씨는 매번 나의 초대 명부에 없던 손님을 몰래 데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화려한 향기에 취해 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친구에게 줄 선물 포장을 위해 꽃송이를 잘라 실로 묶을 때에야 깨달았다. 그의 아랫도리 잎들이 너무 허전한 것이다. 무언가 커다란 입이 다녀간 듯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황급히 화분 밑을 들춘 나는 발견하고 말았다. 새까만 몸체에 짙은 자줏빛 털 가시를 잔뜩 세운 괴물 - 알 수 없는 나비의 유충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정원을 빛낼 큰 나비 한 마리를 기다릴까? 헬 씨의 안전을 위해 아직 어리바리한 벌레일 때 정원 밖으로 쫓아낼까? 결국 둘의 공생을 바랐지만 헬 씨는 시들어 갔고 나비는 번데기도 짓지 못하고 큰비 오던 날 사라지고 말았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을 그뿐만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여치는 마삭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로벨리아 꽃 더미에선 사마귀가 칼을 갈고, 달리아 줄기는 배추벌레 같은 녀석의 복근 운동장이 되어 있다.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어딘가 모종에 묻어왔을까? 바람결에 날아왔을까? 살벌한 메트로폴리스의 옥상에 초대장도 없이 찾아와 자기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다. 그새 연애라도 했는지, 잎 뒤에 알록달록한 알까지 매달아놓았다.

어쩌면 좋을까? 축축한 장마철에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민달팽이는 확실한 적이란다. 나는 달팽이 인형 수집가를 자처하지만, 폭우를 틈타 살아 있는 괄태충들을 담 밖으로 내던지는 만행을 저지른다. 무당벌레는 가장 좋은 친구라지만, 나는 녀석이 진딧물 목장을 돌보는 카우보이 개미들에게 얻어맞는 꼴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아무리 작은 찻잔이라도 그 안에 흙과 물과 씨앗이 담기면 우주가 된다. 누가 주인이고 손님이고 불청객인지, 언제나 아리송하다.

이명석 저술업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