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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의 강병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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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우리 시대의 ‘젊은’ 요리사들
■ 영국과 두바이에서 인생을 걸고 요리를 배웠던 ‘불란서’의 강병일 요리사 홍대 근처에 ‘불란서’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물론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면 왜 가게 이름을 불란서라고 붙였는지 알 것 같다.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호화로움이나 격식이, 이 식당에는 없다. 지나가다 잠깐 들러서 밥 한 끼 먹고 갈 생각이 들 만큼 편안하다. 불란서 강병일 요리사(31)의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문을 연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단골 동네 주민이 늘었다. 처음 ‘불란서’에 갔을 때 주방에서 일하는 강병일 씨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얼굴은, 이런 표현이 어색할지 모르지만, 단단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단호했고, 자신의 요리에 대해 엄격할 것 같았다. 식당에 두 번째로 갔을 때 다시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여전했다. 고2 때부터 요리학원 다녀 단출하고 편안한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달리 강병일 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장 조지의 ‘봉’(Vong), 피에르 가니에르의 ‘스케치’, 고든 램지의 ‘베르’(Verre) 등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생활을 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요리사에 대한 생각을 모두 바꾸었다. “저희 집이 대가족이에요. 그래서 할머니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된장, 고추장도 만들고 엿도 만들었어요.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심 같은 건 한 적도 없어요. 요리사 말고는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죠. 어릴 때 반했던 요리사의 모습은 넥타이를 매고 긴 모자를 쓴 우아한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일하면 죽어요. 더워서. 영국에서 일하면서 오히려 요리사에 대해 더 호감을 가졌던 건 몸으로 하는 일이라는 거였죠. 장을 보기 위해 뛰어다니고 땀을 흘리고 하루 종일 서 있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더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강병일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녔다. 1학년 때부터 다니고 싶었지만 학원을 다니게 해주질 않았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 바로 영국으로 떠났다. 그의 이력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 사람이면 다른 길을 보지 않는 법이다. 영국에서는 자기 돈을 쓰면서 식당에서 일을 했다. 학교도 다녔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듯 요리학교에서 배운 대로 주방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난 후엔 주방에 모든 걸 걸었다. 영국으로 간 뒤 5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참다 못한 부모님은 장남을 보기 위해 직접 영국으로 가야 했다. “너무 심하게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요리를 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내가 만든 음식을 내가 준비해서 내가 파는 거잖아요.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팔게 할 수는 없어요. 책임을 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일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요리를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일을 하는 생활엔 변함이 없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노량진 시장이나 마장동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한다. 준비해서 팔고, 다시 준비하고 팔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영국 생활을 마치고 (그 사이 두바이에서 일했지만 50도가 넘는 날씨에 질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식당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력과 실력을 탐낸 사람들이다. “식당 하나 열고 폼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네가 영국이나 두바이에서 했던 음식을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는 ‘주방에는 한 다섯 명만 있으면 되지’라고 물어요. 그런 음식을 하려면 20명쯤은 있어야 해요. 고든 램지에 있을 때는 주방에 20명이 있었고 스케치에는 45명이 일해요. 한국에 와서 디저트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식당에 투자한 사람이 쇼케이스(진열장) 하나 사주질 않아요. 열심히 디저트를 만들어선 냉장고에 숨겨 놓고 (웃음) 손님들이 사진 보고 달라면 주는 거예요. 어이가 없죠.” 토대가 없으면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냉장고 하나만 예를 들어도 그렇다. 아직까지 동파이프로 벽을 얼리는 직냉식 냉장고를 쓰는 주방이 많은데, 그런 냉장고를 쓰면 벽 쪽에 있는 음식들은 모두 얼어 버리고 만다. 아주 작은 장비가 맛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재료를 쓰는 데도 한계가 많다. 3대 진미라 하는 푸아그라, 트뤼플, 캐비어를 제대로 된 상태에서 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생선과 고기 동시에 먹는 건 이상해요”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두바이의 식당에 있을 때는 재료를 따로 공급하는 회사가 있었어요. 비행기로 재료를 날라 오는 거예요. 한국은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프랑스 사람들 쫓아가 봤자 계속 쫓아가는 거죠. 피에르 가니에르나 고든 램지, 노부 이런 사람들의 음식은 어떤 특정한 나라의 스타일이 아니에요. 자기 이름이 스타일이 되는 거죠. 우리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이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무, 배추 이런 것도 다 쓸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한국 음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게 동시에 한 밥상에 있는데, 그러면 맛을 느낄 수가 없어요. 생선과 고기를 동시에 먹는 것도 이상해요. 생선을 먹을 때는 생선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내고 고기를 먹을 때는 더 맛있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야죠.” 그가 가장 바라는 일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사가 되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직업인으로서 요리사가 아닌, 무덤덤하게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요리사가 아닌, 요리를 하는 게 너무 좋고 장을 보기 위해 새벽에 눈을 번쩍 뜨는 그런 요리사가 모든 주방을 장악하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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